구리(古力) 7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랭킹 1위의 프로기사다. 아직 국제대회 우승이 없는 그의 꿈은 이창호 9단을 꺾고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다.그러나 27일까지 준결승이 치러진 제2회 도요타-덴소배 바둑대회에서 구리는 처음 맞닥뜨린 이창호에 밀려 8강 진출이 좌절됐다. 중국에서 절대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이창호를 꺾는 것은 구리를 비롯한 모든 중국기사들의 숙제다.
중국축구가 공한증(恐韓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바둑에서는 공이증(恐李症)이 심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 구리가 징화스바오(京華時報)라는 신문에 기고한 글이 화제가 되고있다. 질 수 없는 바둑을 역전 당해 돌을 던져야 했던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올림픽에 빗대 승부의 세계와 패배의 철학을 피력한 글이다.
모든 경기에는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참가하면 되는 것이며, 승부는 결코 자신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만 그 속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패는 하루 빨리 잊고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글의 취지다.
▦그의 글대로 중국은 벌써 다음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엔 일본에 금메달을 빌려주었지만 4년 후 찾아오겠다”는 다짐은 남자 체조팀만의 생각이 아니다.
“아테네 올림픽은 아시아의 게임이었다” 는 자크 로게 IOC위원장의 말처럼 아테네에서는 아시아의 약진이 두드러졌지만, 중국의 기세는 정말 놀라웠다. 육상 등 5개 종목의 금메달 119개를 집중적으로 겨냥한 ‘119공정’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2008년에 안방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전 종목출전, 전 종목 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도 있다.
▦다시 구리의 글을 인용한다. “반드시 이기려는 갈망을 가져야 하지만, 진솔하게 실패를 받아들이는 심리적 자질도 갖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빠르게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며 다음 도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어 “승부는 이미 결정 났으니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실패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실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역량을 쌓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상대에 대한 최대의 존중이다”라고 했다. 중국의 성과도 놀랍지만, 이런 패배의 철학이 더 무섭다.
임철순 논설위원실장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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