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의 일원으로 8월 16~20일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보고 왔다. 조상의 얼이 서린 삶의 터전을 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탁월한 문화역량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돌아와서 중국이 새삼스레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째는 개혁ㆍ개방 이후 급속한 체제 변화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을 막고 국가통합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남북한의 통일 또는 북한 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 등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응하고 필요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갖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 제기될지 모르는 동북 지역의 민족 문제, 영토 문제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은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위기 또는 이에 따른 대규모 난민사태 발생시에 중국이 한반도 이북 지역에 정치적ㆍ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을 가정하여 그러한 개입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가 또 다시 열강의 세력 각축장이 되어 민족의 안위와 국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관계의 진전을 통해 열강의 개입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동북아 세력균형자로서의 역할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의 유지는 중요하다. 또한 역사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우호적 협력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ㆍ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의도적인 역사 왜곡에 관해서는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중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난하는 한편으로 한국의 역사를 침탈하는 이중적이고 패권주의적인 행태에 대해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동북아 역사에 대해 한ㆍ중을 포함한 국제적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의 발굴ㆍ보호와 역사 연구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북아가 100여 년 전과 같이 열강의 대결과 침략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과 같은 공격적 민족주의는 지역 안정을 해치고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할 뿐이다. 한ㆍ중ㆍ일이 상호 신뢰에 기초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때 동북아는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중국 정부가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채수찬 국회의원(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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