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의 제국그렉 크리처 지음ㆍ노혜숙 옮김
한스미디어발행/1만5,000원
많은 의학자들이 금세기에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최대 질병으로 당뇨를 꼽는다. 그런데 그 당뇨병, 특히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생기는 제2형 당뇨병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은 비만이다.
이 책은 경고장이다. 비만 관련질병으로 한 해에 28만명이 일찍 사망하고, 당뇨 환자의 치료와 간병을 위해 매년 전체 의료비의 25%인 1,000억 달러를 지출하는 뚱보 국가 미국에만 발부된 경고장이 아니다. 성인의 30% 정도가 비만이며, 해마다 비만인구가 3%씩 늘어난다는 우리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경고는 단순히 비만이 낳는 건강의 위험이나 사회문화적인 차별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LA 타임스, USA 투데이 등 유수의 미국 언론에 건강관련 칼럼을 써온 저자는 최근 30년 동안 미국이 어떻게 체지방면에서 경쟁할 상대가 없는 유일강대국이 되었는지 보여주면서 비만이 개인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정부가 교묘하게 결합하고, 상호작용해서 생긴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육예산의 부족, 잘못된 다이어트법 전파, 심지어 식탐을 관용하는 종교도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비만의 주적으로 몇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알려진 대로 패스트푸드 산업이다. 산업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타코벨, 피자헛, 도미노피자, 그리고 코카콜라, 펩시콜라 등이 시장의 생존경쟁, 곧 자본의 논리 속에서 끊임없이 과식을 유도하는 마케팅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라지 사이즈, 세트 메뉴가 대표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그래서 뚱뚱해지는 것에 관대하지 않았지만 봉지에 담은 감자튀김을 바닥까지 긁어 먹던 1970년대 사람들이 ‘늘어난 양’에 만족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번 늘어난 위장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 법이다. 패스트푸드 회사들은 ‘미국의 소비자들을 자신들의 상품을 끝없이 담을 수 있는 늘어나는 그릇’으로 여겼고 ‘미국인들은 절제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식물성 기름으로 위장한 쇠기름’이라는 고도의 포화지방인 팜유, 설탕보다 당도가 높지만 분해과정 없이 바로 간에 도달하는 고과당 옥수수시럽(HFCS)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저자는 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정권에서 농림부장관을 지낸 얼 버츠가 주도한 농산물 가격인하정책은 검증되지 않은 이런 식원료들을 마구 사용할 기회를 활짝 열었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재정부족으로 교육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하면서 체육교과가 줄어드는 것은 청소년 비만, 특히 저소득층 자녀들이 살찌는 데 큰몫을 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고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하면서 식사시간을 줄여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먹이기에 급급하게 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TV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나마 중상류층에서는 통제가 가능했지만, 가난한 노동자 계층에서는 걷잡을 수 없다. 20~74세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들의 경우 비만율은 빈곤선 이하 사람들이 빈곤선 이상 보다 약 13% 더 높다.
당뇨병은 45~74세까지 히스패닉 흑인은 최대 26%지만, 같은 연령대 히스패닉 백인은 12%에 그친다. 베스트셀러를 통해 전파되는 ‘마음껏 먹으면서 살 뺀다’ 식의 잘못된 다이어트법, ‘뚱뚱하면서 건강할 수 있다’는 거짓 상식도 일조했다고 강조한다.
물론 40대가 지나면서 자꾸 아랫배가 나오고, 갈수록 소아비만이 늘어가는것을 이런 몇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살이 찌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살을 빼는 데도 분명 개인마다 차별이 있다. 문제는그것을 오로지 개인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날 누가 자신을 “뚱보”라고 부르는데 충격을 받고 체중감량에 애쓴 경험이 있는 저자는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내가 체중감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의지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계층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살 빼는 약이 효과가 있었던 건 2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찾게 만든 훌륭한 의사, 안심하고 걷고 달릴 수 있는 공원, 날씬한 몸매의 가치에 대해 공감하는 친구들, 아내가 차려주는 건강식, 건강에 대한 책들, 최근의 영양학 발전에 대한 의학 기사들이 뒷받침해주는 중상류층의 지원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과 시간이다.’
올해 미국에서는 14만4,000건 정도의 위절제 수술이 예상된다고 한다. 1992년 1만6,200건에 비하면 거의 10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본격 도입된 이 수술이 급증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언한대로 “비만은 가장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다. 비만에 관한 훌륭한 사회학적 보고서인 이 책은 개인이 식사량을 줄이고, 열심히 운동해서 이 심각한 질병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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