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8월28일 바그너의 3막 오페라 '로엔그린'이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초연됐다.그러나 정작 바그너 자신은 이 공연을 관람하지 못했다. 그 전해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정치적 소요에 휘말려 스위스 취리히로 몸을 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이 작품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1862년 5월 빈에서였다.
음악만이 아니라 대본까지 바그너가 손수 쓴 '로엔그린'은 10세기 전반 플랑드르 지방(동북부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스헬데 강변을 무대로 삼고 있다. 브라반트국 영주인 어린 남동생 고트프리트 공작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한 엘자를 성배(聖杯)의 기사 로엔그린이 나타나 구원하고 혼례를 올리게 되지만, 혼례 도중 엘자가 남편의 신분을 의심해 금단의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사랑이 파탄한다는 이야기다. 제1막의 '엘자의 꿈'이나 제3막의 '신부들의 합창' 같은 노래들은 특히 널리 알려져 오페라와 독립적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로엔그린 이야기는 중세 이래 독일과 프랑스 지역에 퍼져있던 전설이다.
'로엔그린'의 배경이 된 스헬데강 어귀 안트베르펜은 중세 이래 교역의 중심지였다. 벨기에의 네덜란드어 사용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어 사용자들에게 '점령'된 수도 브뤼셀을 제쳐두고 안트베르펜을 자신들의 진짜 수도라고 생각한다. 이 도시는 현재 유럽 제일의, 실질적으로는 세계 제일의 다이어먼드 도시다. 안트베르펜 중앙역 앞에는 보석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거기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세계 다이어먼드 시세를 결정하는 세칭 다어어먼드구역이 있다. 중앙역과 연결된 지하철역 이름도 디아만트(다이어먼드)다. 무장한 사설 경비원들이 출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이 구역에서는 세계 굴지의 다이어먼드 상인들과 가공업자들이 둥지를 틀고 하루 스물네 시간 빛나는 돌들을 만지작거린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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