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친일진상 규명법 개정안이 일제 때 일정 직급 이상을 지낸 사람을 사실상 모두 친일파로 규정하는데다 인권침해 요소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당은 뒤늦게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법안을 손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정안의 2조와 20조에 따르면 고등문관(군은 소위, 경찰은 경시)이상에 오른 인사들은 반일 행적을 입증하지 못하면 구체적 친일행위가 밝혀지지 않더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다.
일본군 중위를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도 구체적 항일 행적을 제시하지 못하면 친일파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개정안의 친일파 범주에 포함되는 상당수 인사가 이미 고인이 됐는데 어떻게 반일 행적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다. 아울러 특정 직책을 역임했다고 해서 예외 없이 친일파로 모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희선 의원측은 "그 직책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적극적 친일로, 개인의 구체적 행위가 밝혀지지 않아도 역할 자체가 친일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당 과거사청산 태스크포스팀 간사인 강창일 의원은 "혐의자로 해야지, 곧바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위원회가 심의해 친일파를 골라내도록 한 규정과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도 문제다. 신기남 전의장 부친의 친일 파문이 일었을 당시 안영근 의원은 "조사범위를 헌병 오장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개정안에는 이미 일반 군경은 물론 금융조합 서기 등 일제가 만든 경제기관이나 단체에 재직한 모든 직원이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이런 말단 직원의 행적에 대한 허위 증언이 나왔을 경우 규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고위직은 기록 등으로 검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을 주민의 증언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진위를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포상금을 노리거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거짓 증언이 홍수를 이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여당 지도부를 겨냥한 잇단 가족사 폭로가 매카시즘적 무차별 폭로전의 서막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 법원의 영장 없이도 진상조사 위원회가 조사대상자에게 동행 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이하의 벌금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강창일 의원은 "개정안에 무리한 측면이 있어 당내 논의를 거쳐 손질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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