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쪽 천국하종오 지음
문학동네 발행/7,000원
“인간의 어떤 생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
1975년 등단한 하종오 시인이 시력 30년에서 한 해를 무질러 낸 시집 ‘반대쪽 천국’의 자서(自序)는 그렇게 시작한다. 그는 “태어났으니,
다 저 살자고 무언가 해야 할 테니,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에서 그 누군들 자신을 애틋하게 여기지 않겠는가”라 한다. 생에 대한 야멸찬 부정의 덧정 없음과 물색 없는 긍정의 자발없음을 다만 ‘쓸쓸한 일’로 두어 손사래 치는 것이다. 그는 “금세기 초 이 땅의 사람 살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 사는 그가 강화도 불은면에 땅과 집을 얻어두고 반반씩 나고 든 세월이 벌써 14년째다.
해도 그의 농사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들로부터 농력의 피를 이어온 촌사람 눈에야 푸성귀로 면목만 세운 반풍수 맞잡이일 터. ‘모낼 적에윗논 주인이 고리눈하고 보고는/ 열 가마 나오겠다 하더니만/ 가을에 거둬놓고 보니 딱 나락 열 가마다/ 두 마지기 덜 되는 서울 사내의 논에서다…’(‘눈짐작’) 뒷산 은행이며 텃밭 호박 소출도 매양 그런 식이다. ‘시골 온 지 십년, 철마다 두 눈 뜨고도/ 비 올 날 볕 들 날 짚지도 못하는 서울 사내를 무시하면서/ 촌사람들은 한눈에 두세 철 건너 저편을 쉽게 봐버렸다’.
농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정으로는 그 역시 영락없는 촌사람이다. 시인이외진 산 밑 집터를 측량해 줄 쳐 막은 것을 두고 부락회의가 열렸나 보다. 원래 길이었으니 도로 내놔라, 그동안 남의 땅 잘 밟고 다녔으니 고맙다고 해라, 공방이 왁자했다.
‘시시비비 안하고 싶어 달을 쳐다보는데/ 가장 나이 든 어르신이 낮게 말씀하셨다/ 지난 십 년간 빌려주었으니 고마웠다고/ 앞으로 십 년간 더 빌려주면 더 고맙겠다고/ 조상님들 먼저 가서 묻히신 공동묘지 오르는 길이니/ 우리 모두 가서 묻힌 뒤 돌려주면 안 되겠느냐고’(‘나이 대접’) 시인은 내처 달만 바라볼 뿐이지만 전의는 이미 시르죽은 지 오래다. ‘달이마악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노인네들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가/돌아오기까지는 눈 한 번 감고 뜬 사이였다’.
4부로 나뉜 시집의 3부가 시인의 눈에 든 촌사람들의 삶, 4부가 마음에 남은 그의 촌살이의 시라면, 1부는 ‘땅’ 바깥살이의 풍경, 2부는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안 부부나, 한국에서 만나 부부가 된 아시안 및 자식들) 들의 이야기다. ‘천국 시리즈’로 이어지는 1부의 시속 풍경은 불편하다.
전쟁, 탐욕, 소비, 몰카 등의 세상을 그는 ‘천국’이라고 했다. 괭이나 삽을 들고 ‘흙길을 너끈하게 밟던’ 직립보행의 삶 대신 돈가방, 서류가방을 들고 올라선 에스컬레이터는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기대고 있는’ 듯하다 (‘에스컬레이터 천국’).시인은 아스팔트 위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신호등 앞에 서면 그리워도 만나러 올 수 없고, 안타까워도 갈 수 없다. ‘무수한 신호등에 길들여져/ 서라고 하면 서고 가라고 하면 가면서/ 의식주 편한 한 곳으로 이끌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아스팔트 천국’). 시인은 ‘우리가 없다’고 탄한다.
옳고 그름, 긍정과 부정의 판가름은 ‘쓸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좋고싫음까지 부정되지는 않는다. 해서 시인의 금세기는 언제, 어디나 천국과 반대쪽 천국의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러니 생은 그대로 두어봐도 쓸쓸한것이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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