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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꼴찌는 꼴찌다

입력
200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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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아테네 올림픽 여자육상 800m예선의 꼴찌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딛고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팔레스타인 여성이었다. 500m예선에서는 17세의 페루소녀가 1등에 2분이나 뒤진 기록으로 꼴찌를 했다. 시드니 올림픽 때도 수영 자유형 100m에서 꼴찌를 한 기니의 무삼바니가 헐렁한 수영복에 특유의 개헤엄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남들은 메달이 목적이었지만 나는 익사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헤엄쳤다”는 말도 재미있었다.꼴찌는 역시 마라톤에서 가장 빛난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때 탄자니아의 아쿠와리는 피투성이가 된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한밤중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이번에도 몽골의 여자 마라토너가 우승자인 일본의 노구치보다 1시간 22분이나 늦게 들어오고도 박수를 받았다. 꼴찌의 인기가 높자 캐나다의 웹 디자이너는 사랑스러운 꼴찌들의 이야기를 모은 블로그(www.mcwetboy.net/dfl)까지 만들어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서 꼴찌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소설가 박완서씨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집을 낸(1977년) 이후가 아닌가 한다. 그때부터 꼴찌는 갈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막히는 버스에서 내린 박씨가 목격한 꼴찌는 마라토너였다. 그의 정직하게고통스러운 얼굴,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에 감명받아 1등과 같은 환호없이 달릴 수 있어 위대해 보이는 스포츠맨에게 박수를 쳤다고 한다.

왜 꼴찌만 보면 갈채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부정과 사기가 용납되지 않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분명 아름답고 사랑스럽다.하지만 그 갈채에는 근거없는 유행이나 학습된 고정관념이 섞이지는 않은것일까. ‘꼴찌를 위하여’라는 유행가에는 1등을 하는 것보다 꼴찌가 더 힘들다는 대목이 있다.

가사는 ‘어설픈 1등보다는 자랑스런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을 거야’로 이어지지만, 엄밀히 말해 1등보다 꼴찌가 되는 게 더 힘들 수는 없다. 그런데도 꼴찌의 미덕을 강조하고, 그런 강조가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왜 크든 작든 축구경기만 열리면 광장으로 뛰쳐나와야 하고, 다음 날 아무 할 일도 없는 사람들처럼 한밤중까지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쳐야 하나. 스포츠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연예ㆍ오락프로그램 방청객들의 “오~”하는 탄성은 그 억양과 길이가 항상 같게 느껴질 만큼 획일적이다.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하는 말이 똑같다. “바람도 시원하구요, 사람들도 많아서 좋아요.” 방송이 그런 사람들의 말만 편집해서 내보냈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지금 우리 사회의 지배적 풍조는 이런 맹목성이나 획일성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돼 학습되고 복제된 행동을 되풀이하는 일종의 그루피(groupie)현상은 아닌가. 스포츠와 일상생활은 물론, 노조의 시위나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양태도 대부분이 비슷하다.

정부의 정책결정에서도 그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고, 그들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도 그루피 현상의 하나다. 정치ㆍ사회적 약자나 꼴찌에 대한 배려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특정 정책의 적용시점이나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면 말썽만 일어나게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창한 좌익 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이 대표적 사례다. 어제 교육부가 발표한 내신 9등급제의 대입제도 개선시안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꼴찌들을 살리기 위해 1등을 죽이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꼴찌는 꼴찌다. 꼴찌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이고 획일적인 갈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철순 논설위원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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