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외할머니 손맛-백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외할머니 손맛-백숙

입력
2004.08.27 00:00
0 0

산골에 홀로 사는 외할머니 집에 맡겨진 서울 손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에는 ‘백숙’요리가 나온다. 닭고기가 먹고 싶다는 손자 상우에게 할머니가 백숙을 해 주지만 프라이드 치킨 등을 생각했던 상우는 괜히 심술이 나서 상을 돌아보지도 않고 잠들어버리는 그 장면이다. 하지만 배가 고파 잠을 깬 상우는 냄비 속에 담긴 닭백숙을 보고 맛있게 먹어 치우는데 그제서야 할머니의 사랑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쓰다듬는 한여름의 끝 자락, 문득 백숙 요리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한국인의 전통 영양식 백숙은 그간 밥상에서 다소 소원했던 메뉴.

어린 소년 상우가 처음 마주한 닭백숙을 마뜩찮아 했던 그 모습도 비단 영화에서만은 아닌 듯 하다. 요즘 세대가 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 닭요리 등자극적인 맛에만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는 백숙을 맛보며 가족의 정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

■ 백숙이란

백숙(白熟)은 고기나 생선 등을 양념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힌 음식이나 조리과정을 뜻한다. 닭이나 오리 백숙도 다른 재료나 양념 없이 그냥맹물에 넣어 끓여낸다. 그래서 백숙은 육류 본래의 맛을 느끼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음식이다.

보통 어린 닭에 인삼과 찹쌀 등을 넣고 끓여낸 것을 삼계탕이라 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삼계탕도 백숙의 한 종류이다. 백숙에 인삼을 넣은 요리인셈.

■ 백숙이 멀어졌던 이유들

쟁반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른 닭살, 수분이 빠져 터벅터벅한 살, 이런 것들이 그간 백숙이 주던 인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통 한식당에서 곁가지 음식으로 내놓다 보니 아무래도 정성과 전문성이 떨어진 탓이다.

더욱이 기름에 튀겨낸 패스트푸드나 조미료, 강한 향신료를 쓴 치킨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백숙만 전문적으로 내놓는 전문식당이 거의 없었던 것도 한 이유다.

■ 백숙이 맛있는 이유

원래 백숙은 시골에서 방목하며 튼튼하게 기른 닭만을 재료로 쓴다. 닭장에 가둬 둔 채 대량으로 기른 일반 육계로는 제 맛을 살릴 수 없다.

건강한 닭을 몇 시간이고 정성들여 고아낸 백숙엔 닭고기 특유의 육질이 살아 있다. 그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란…. 반면 튼실한 닭이 아니라면 금새 표가 난다.

국물 맛을 즐기는 것이 어찌 삼계탕 뿐이랴. 알고 보면 백숙의 국물이 더진국이다. 닭이나 오리고기 고유의 향이 살아 있는 국물은 진하면서도 시원하다. 국물에 죽을 쑤거나 찰밥을 말아 먹는 것 또한 백숙만이 가질 수있는 맛의 향연이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백숙 3선

●오메기감나무집 (031)453-7848 경기 의왕시 토속마을

적두백숙, 은행백숙, 옻백숙 등 체질에 따라 약선백숙을 맛볼 수 있는 곳. 보통 백숙이라면 고기와 국물이 따로 나오는데 이 집에서는 같이 나온다. 돌솥에 닭이나 오리, 약재를 넣고 고기를 익혀 국물을 함께 낸다.

고기도 고기지만 국물 맛을 잊지못해 다시 찾는 손님이 많다. 백숙 요리만 15년 해오고 있다.

체질과 증상에 따라 골라먹을 수 있도록 백숙의 종류가 10가지나 된다. 부기를 가라 앉힌다는 팥을 넣은 적두백숙, 호흡기 질환에 좋다는 은행백숙, 땀이 많이 나는 이에게 좋은 황기백숙, 정력에 좋다는 옻닭백숙 등이 인기 메뉴들.

피부 미용에 좋은 다시마 백숙, 어깨 아픈 사람들을 위한 엄나무백숙, 부인병에 좋은 당귀백숙 등도 잘 나간다. 모두 주인인 김기웅, 이금영 부부가 개발, 경기도 향토음식으로 지정받은 것들이다.

동그란 모양으로 쌓아 나오는 찹쌀찜밥은 식사 마무리로 인기만점이다. 찹쌀에 건율 대추 등을 넣고 백숙 국물에 쪄낸다. 바닥에는 측백나뭇잎을 깔아 잎사귀 향과 국물의 향이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국물에 말아 먹거나 죽으로 쑤어 먹는 것은 선택사항. 국물에 밥을 넣어 내놓지 않는 이유는 국물이 탁해지면 맛을 제대로 못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에서 끌어온 약수만을 사용하고 야생초로 담근 차도 다양하게 내놓는다. 시골 가정집을 개조, 시설은 수수하지만 주인 부부의 맛과 영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닭ㆍ오리백숙 4만원

●설봉산약수터집 (031)635-4878 경기 이천시 이천세계도자센터 옆, 서울 암사점 (02)428-6002

2대에 걸쳐 전통 백숙요리만 35년째 이어 오고 있는 전문점. 승용차를 타고 설봉산 기슭 좁은 길을 달려 올라가야 보이는데도 손님들이 줄을 선다.

토종닭만을 재료로 물좋은 이천약수로 만든 육수에 삶아 고기만 쟁반에 따로 낸다. 육수에 황기 등 한약재가 들어가서인지 땟깔이 노르스름한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살을 뜯어 먹으면 질기지 않으면서도 쫄깃해 생기가 느껴진다. 특히 바삭바삭한 껍질은 ‘닭껍질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나’하는 감탄사를 나오게 한다.

고기는 소스에 찍어 먹는데 맛이 새콤매콤하다. 직접 담근 간장과 고추장에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것인데 오래 숙성시켰다는 것을 맛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닭은 토종닭이어서 일반 육계보다 체구는 작아도 다리와 목이 길다고 한다.

육수도 고기처럼 노르스름한 색깔이 나는데 죽을 쑤는데 사용된다. 고기를 다 먹을 때쯤 나오는 죽도 맑고 연한 노란빛을 띤다. 한 술 뜰 때 혀를 감싸는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매력.

주인 김태호씨는 “죽 맛을 보려고 닭구이를 먼저 먹고도 일부러 백숙을 또 주문하는 손님이 많다”고 자랑한다. 찹쌀은 근기가 좋은 이천찹쌀만을 써서 그런지 찰진데다 탱글탱글하다.

죽은 미리 쑤어 놓지 않고 즉석에서 바로 쑤어서만 내준다. 같이 나오는 깍두기 국물을 끼얹어 먹는 손님이 많다.

식당 주위에는 호두나무가 많이 서 있고 수풀이 무성해 흡사 숲속에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평상도 많이 깔아놔 야외에서 식사하는 기분을 낸다. 숯불구이와 뼈없는 닭구이, 토종닭 등도 잘 나간다. 마리 당 3만원.

●배나무골 (02)528-5292 삼성동 섬유센터점, 뱅뱅4거리점 3463-5292, 압구정점 3443-5292

보양식인 오리백숙 전문점. 크고 높다란 뚝배기에 오리 한 마리와 각종 한약재를 넣고 끓여내는데 국물이 맑고 진하다. 오리는 3개월 이상 사료에 유황을 섞어 먹여 키운 유황오리를 사용한다. 공해 해독에 좋다는 유황오리는 일반 오리보다 크진 않지만 먹어 보면 살점이 탱탱하다.

고기는 볶은 소금에 찍어 먹는데 여러가지 피클이 맛을 더 북돋아 준다. 할라피뇨로 만든 이 집 특유의 고추피클은 특히 고기를 먹은 뒤 입안의 잔 맛도 없애 준다.

국물에는 기름기가 거의 없이 담백하고 개운하다. 고기 위에 놓인 삶은 오리알을 꺼내 먹는 것도 잊지 말 일. 남은 국물에는 보통 찰밥을 넣어 죽을 쑤어 먹는다.

백숙요리는 3가지로 맛볼 수 있다. 오리에다 황귀 당귀 인삼 녹각 밤 대추 등 각종 한약재를 넣고 끓인 유황백숙신약탕은 8만원, 여기에 동충하초를 더한 동충하초신약탕은 10만원인데 이달 31일까지는 특별 프로모션 기간이라 6만6,000원만 받는다.

오리의 껍질과 살을 바른 다음에 잘게 으깨서 죽으로 내는 백숙죽은 식사 메뉴로 잘 나간다. 8~9명이 먹을 수 있는 한 마리는 3만7,000원, 반 마리는 1만9,000원.

/박원식기자 par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