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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내 마음 속 흑백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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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내 마음 속 흑백TV

입력
200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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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우리 집에는 두 대의 흑백 TV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여닫이문이 달린 ‘가구형’ 이었는데, 다리가 부러져서 위태하고 화면도 찌그러지는데다가 소리도 지직거려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그런 TV가 나의 사랑을 받는 시간이 있었으니 당시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정재동 선생님이 해설과 함께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음악 프로그램 때였다. 아마 번스타인의 청소년음악회(Young people's concert)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이 시간은 다른 가족들이 외면하기 일쑤여서 추운 거실에서 혼자 떨며 고물 TV를 켜야만 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그 장면들은 나에게 지휘자라는 직업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원로 피아니스트 백낙호 선생님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연주하던 장면도 생생하다. 지금도 ‘언제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흑백의 장면들이 머리를 스친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방송매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화질도, 소리도 좋아졌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프로는 왜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걸까.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포퓰리즘적 현상이다.

철학자 니체는 “예술가는 어린시절 최초의 예술경험으로 평생을 산다”고 했다.전 국민이 ‘파리의 연인’에 울고 웃을 때, 외딴 구석에서 흑백TV라도 틀면 볼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가 또 자신의 꿈을 간직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어딘가는 이 말초적 자극으로 가득 찬 전파 매체에서 몸을 피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영민 지휘자ㆍ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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