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48) 대법관이 25일 임명장을 받고 임기를 시작했다. 김 대법관은 하루 전에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즐겁고 영광스럽기 보다는 어찌해야 할지 두렵고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김 대법관은 대법관 제청 당시의 흥분이 가시고 평소처럼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감수성이 소수의 감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대법원에 '여성의 소리'가 커질 것임을 예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법관이 된 소감은.
"지난 한달 사람들을 만나보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서 그런지 기대가 참 높다. 어찌할지 두렵지만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하겠다. 대법원 연구관 시절 지켜본 대법관은 시간이 부족하고 사건도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만큼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병섭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지적처럼 대법관 선정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지적됐다. 입장이 있다면 말해달라.
"작년부터 절차를 마련해 진행된 것인 만큼 문제가 없다고 본다. 또 나는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4인은 물론 시민단체의 추천과는 무관하게 대법원장이 추천한 3인에 모두 포함된 걸로 안다. 이런 것이 비공개 돼 오해를 부른 것으로 이해한다."
―최근 사법부가 외부의 입김에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염려를 해주는 것은 좋지만, 예컨대 외부 입김을 의식해서 판결한다면 판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논의가 활발한 사법개혁 방향에 대한 생각은.
"법률소비자인 국민의 접근과 참여를 넓히는 방향이 옳다. 법치주의의 훈련을 위해서라도 이런 방향이 유지돼야 한다."
-호주제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생각은.
"호주제는 폐지가 옳고 다수 의견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국보법 폐지문제는 정치권에서 선택할 문제다. 예민한 주제라서 개인적 생각을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재판 신뢰 문제도 있다."
―대법관은 사회 갈등의 조정자라는 상징성이 있으나 한편으론 승진 코스이다. 이런 시각에 대한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어진 소명이 있다면.
"질문에 답이 포함돼 있다. 대법관은 그간 경력 중심의 훈련 받은 인물이 오는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건처리 기능과 함께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가 대법관이 된 것도 이런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하고 여성과 소수를 생각해 달라는 바람 덕분일 것이다."
―여성관이 있다면. 또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아직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소수이고, 사회적 소수의 감성과 닿아 있다. 진보 문제의 경우 (그동안 지닌) 개인의 생각이 잘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과거 고수했던 생각에 잘못된 부분은 고쳐 나가갔다."
―개인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했던 경험은.
"택시 운전사, 지하철 역무원이 반말을 해 "나를 아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다. 결혼한 여성은 출산, 육아 문제로 먼저 부딪힌다. 나는 덜하겠지만, 가정에서 남녀간 힘의 균형문제 등 여성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분이 많다."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가정에서 힘의 균형을 느끼게 했나.
"그 질문이 나올까 봐 조심스러웠다(웃음). 남편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시부모 봉양 등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다. 저만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여성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남성들도 자인하는 부분 아니냐."
―10년 이상 선배 대법관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데 부담스럽지 않나.
"그 점을 감안해 대법관을 시킨 것이니 당당하게 하겠다. 선배들은 '환영한다'면서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대법관이 되면 일이 많아서 6년 중 단 하루만 좋다'는 말도 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고교, 대학 동창인데 덕담은 들었나. 또 판사인 동생의 판결을 파기할 자신 있나.
"자기가 장관에서 물러나고 제가 대법관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참 좋다면서 축하해 줬다. 동생(김문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판결이 대법원에 오면 원리원칙대로 해야죠(웃음)."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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