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미장원 개업했어요. 달이 가로등 만큼 가까이 뜨는 동네라지만, 간판 올리고 집기 들여놓으니 일류 미용실 못지않아요. 정환이는 개업떡 돌린다고 신이 났고, 병천 아저씨는 천정을 찌를 듯한 화환을 보내주셨어요.아빠는 그곳에서 엄마 만나 행복하시겠죠. 약으로 고통을 달래지 않아도 되고요. 딸이 조폭들 협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제 앞가림 하는 걸 내려다 보시니 흐뭇하시겠죠.
그런데 왜 자꾸 저는 눈물이 나는 걸까요.
저 때문에 가위에 찔려 한쪽 눈을 잃고도 제가 상처 입을까 봐 숨겨온 것처럼 저에 대한 사랑도 왜 마음속에 감추어 놓으셨나요. 왜 저에게 사랑할 시간을 남겨놓지 않고 떠나셨나요.
아빠! 당신은 제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었어요, 당신은 제 삶의 버팀목이었어요.
아빠! 사랑해요.”
가족이란 단어는 즐겁고 기쁨에 가득 차 있을 때보다, 외롭고 힘들 때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영화 ‘가족’은 바쁜 일상에 묻혀 그 가족의 소중함을잊고 지내는 현대인의 목젖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3년만에 교도소를 나온 전과 4범의 전직 소매치기 정은(수애). 두부 한 모권하는 이 하나없이 외로운 출소를 맞았지만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의 중심인 아버지(주현)가 반가운 웃음 한번 짓지 않고 “왜 왔어? 언제 나갈 거야?” 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면.
‘가족’은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갈등을 소재로 했다. 빗나간 자신을 감싸주기는커녕 계속 그 길로 몰아치는 듯한 아버지가 딸은 야속하기만 하다. 아버지 역시 속내는 모르고 겉만 보고 판단하는 딸이 안타깝다. 틀어지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부녀관계. 둘을 화해로 이끄는 것은 가족을 위협하는 외부의 폭력이다.
돈을 갚으라는 조폭의 폭력 앞에 딸은 아버지 마음속에 감춰진 애틋한 사랑을 알게 된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러브스토리’를 완성한다.
가족사랑이란 주제도, 그것을 아버지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확인하는방식도 낡아 보인다. 그러나 신인 이정철 감독은 그런 약점들을 변칙적으로 감추려 하지 않는다.
어깨 힘을 빼고 차분한 연출로 관객의 눈물을 이끌어낸다. 30년 연기인생처음으로 삭발까지 하며 영화에 몰두한 주현의 내면 연기와 데뷔작임에도반항적인 딸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수애도 영화를 무게감 있게 만든다.
소화하기 거북한 날것의 영화들이 넘쳐 나는 요즘, 맑은 눈을 되찾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 식탁에 마주 앉아도 눈길 한번 서로 마주치기 힘든 가족이라면 이 영화를 보라. 서로에게 닫힌 마음을 열어줄 열쇠를 하나씩을손에 쥘 것이다. 15세관람가. 9월3일 개봉.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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