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자연스럽게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비록 지금은 중국 문자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한국어의 발음은 여전히중국어와 많은 유사함을 보여준다.” 대만의 한 정부 산하 기관에서 한 주장이다.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발맞추어 대만도 나선 모양이다. 화가 나겠지만,이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적으로 중국의 조공국이었고, 문화적으로 속국이었다. 우리는 신라와 당이 고구려를 패망시킨 이래 자주 정신을 가진 일이 없고, 한글 이외에는 독자적인 문화를 일군 일도 없다.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제3국 사람들에게 우리가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조공국이었다고 강조해보아야 쇠귀에 경읽기다.
고구려 패망 이래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은 강대국에게 굽실거리거나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외세에 저항하고 목숨 바친 사람들은 핍박받던 민중들이었다. 몽골 침략,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 침탈 모두 그랬다.
지배층은 무엇보다 자기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에 강대국을 추종했다. 친일 부역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라의 경덕왕이 고유의 복식과 관직 이름을 없애고 중국 것을 받아들인 것도 좋은 보기다. 인명과 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고 중국어를 들여와 고유어를 없앴으니, 우리말의 발음이중국어 발음과 비슷해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 브랜드화’니 ‘동북아 허브’니 하며 영어남용이 정당화되고,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한자를 써야 한다는 사대적인 주장들이 어지럽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 공항은 언어 주권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없이 자국어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틈에 잘 보이지도 않게 적어 놓았다. 더 이상 ‘세계화’니 ‘허브’니 하는 헛소리로 정당화하려고 하지 말라. 세계 어느 공항도 이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서울을 ‘한청’이라 표기하는 짓거리로 모자라 중국 글자로 어떻게 쓰는지 공모까지 하여 바치려는 사람들에게서 자국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긍지라도 찾을 수 있는가?
이런 상황이니 중국이든 미국이든 어찌 우리를 깔보지 않겠는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 흥분하는 우리 자신이 정작 어떤 짓들을 하고 있는지 차분히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국의 성장에 즈음하여 고유 문화를 말살하고 중국것만 숭상했던 중화 사대주의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지 않는한, 부끄러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김영명/한림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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