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미술관에는 작지만 아름답고 고즈넉한 조각공원이 있다. 나는 이곳을‘뒷동산’이라고 부르는데, 굳이 시간을 헤아려 보지 않아도 풀들의 움직임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뒷동산은 늘 삶의 진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나무들은 서로서로 눈에 뛰려고 치열한 싸움을 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이되면 지고 만다. 쉽게 지나쳐 버리곤 하는 구석 귀퉁이에는 눈에 익은 이름없는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누가 애써 찾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없이 소담한 그늘을 만들며 커다란 나무들이 돋보이도록 가여운 노력을 한다. 갸우뚱거리며 노력하는 이작은 풀들로 커다란 나무들은 더욱 더 풍성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천직으로 삼고 일하는‘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미술과 대중을, 작품과 관람객을 소통시키며,‘미술’이 커다랗게 돋보일 수 있게 소리없이 노력하는 작은 풀과도 같다. 전시가 잘 기획돼 커다란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울창한 숲을 만들려면 작고 하찮은 일들에도 섬세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 제법 선선함을 느낀다. 커다랗고 잘생긴 나무는 나무대로, 작고 여린 풀은 풀대로 저마다 역할이 있다. 남과 비교하면 행복을 찾지 못한다.
아름다움이란 꾸미지 않는 본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결실의 계절을 맞아 한여름을 이기고 열매 맺기를 눈앞에 둔 우리 자연에 감사해야 할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오고야 마는 자연의 변화에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신정아ㆍ성곡미술관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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