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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委, 국보법 전면폐지 권고/국가기관이 "악법"규정…개폐논의 새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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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委, 국보법 전면폐지 권고/국가기관이 "악법"규정…개폐논의 새 전기

입력
200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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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24일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를 권고함으로써 정치권의 국보법 개폐 논란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국보법은 그동안 제정 및 운용과정의 비민주성과 숱한 인권침해 논란으로 국내외 인권기구로부터 수 차례 개폐 권고를 받았으나, 국가체제 유지라는 명목 하에 56년간 존속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기관인 인권위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 국보법의 전면 폐지를 권고하고 나섬으로써 정치권의 국보법 개폐 움직임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인권위가 국보법을 '헌법상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적 악법'으로 규정한 것은 더 이상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이유로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한단계 고양된 인권의식을 반영한다. 김창국 인권위원장이 "국보법 폐지 권고는 이념 차원이 아니라 순수 인권 문제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권위는 먼저 국보법이 행위에 따라 처벌하는 근대형법의 원칙에 반하는 시대역행적 법률이라고 비판했다. 즉,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범죄행위 실행 전 단계의 '예비·음모'까지 광범위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은 행위형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특히 반국가단체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소지가 크며, 남북 교류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인권위는 "몇 개 조문의 개정만으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치유될 수 없으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의 권고를 존중하고 수용한다는 차원에서도 국보법을 전면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로 판단된다"고 못박았다.

인권위의 국보법 폐지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사항 일 뿐, 강제성은 전혀 없다. 권고를 받은 기관이 수용하기 어려울 때는 서면으로 수용불가 이유를 적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같은 국가기관으로부터 '악법'으로 판정 난 국보법을 법무부가 적극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보법 개폐 문제는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국가 아젠다'라며 한 발 물러서 있던 법무부는 인권위가 선봉에 나서자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던 듯 홀가분해 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도 국보법 개폐 논의의 중심 축이 폐지 쪽으로 급격히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보법 폐지안에 서명한 의원들은 열린우리당 80여명, 민주노동당 10명, 민주당 9명 등으로 국회 과반의석(150석)에는 미달한다. 하지만 12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보법 폐지 국민연대'가 올해를 국보법 폐지의 최종시한으로 정한 가운데 이번 인권위 결정까지 나와 폐지 서명 의원들은 "동참 의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잔뜩 고무된 모습이다. 그러나 "북한이 대남 적화전략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만큼 안보를 위해 국보법은 필요하다"라는 한나라당 지도부 및 보수단체의 논리도 여전히 강경해 국보법 개폐 문제는 9월 정기국회에서 최대의 정치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 김창국 인권위원장 문답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24일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와 관련, "전적으로 인권문제의 시각에서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소수의견이 있었나.

"재적 위원 11명 중 공석인 1명을 제외하면 10명이다. 재적 과반수가 찬성해야 의결되는데 어제 회의에는 위원 전원이 참석해 전면 폐기 8명, 대폭 개정 2명으로 폐지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데.

"강제성은 없지만 권고 받은 기관은 인권위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고 부득이하게 수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서면으로 소명하게 돼있다. 국보법 문제는 이미 정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만큼 우리 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입법 초기부터 국보법의 모순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었다는데.

"국보법을 제정할 때 권승열 당시 검찰총장이 국회에서 '국보법은 가벼운 매로 대할 사안을 도끼로 대응하는 것 같아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1차 개정 때는 권씨가 법무장관이었는데 그 때도 '이 법은 임시조치다. 고로 인권침해 소지가 있더라도 국가 건설하는데 좀 참고 견디자'고 했다. 이는 당시 입법자와 정부당국도 국보법의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인권위가 결정까지 시간을 너무 오래 끈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일부러 시간 끈 것은 아니다. 그간 국보법에 대해 존치론, 개정론, 폐지론 등 다양한 논란이 있었으므로 국가기관의 의견 표명은 신중하게 체계적, 역사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국보법이라고 하면 이념논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이번 검토과정에서 전적으로 인권문제의 시각으로 접근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법무부·검찰 반응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받은 법무부는 즉각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권고내용을 좀 더 살펴봐야 한다"라는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국보법 개폐는 정부가 먼저 나서기 보다 국회를 통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정치권의 논의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뿐, 별도로 국보법 개폐 작업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며 "사실 이 문제는 정치권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법무부는 필요할 때 의견을 내는 입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도 "검찰은 정치권의 결정에 따라 법을 성실히 집행하는 임무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개정이 아닌 완전 폐지를 권고한데 대해서는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법무부 한 검사는 "국보법 개폐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논의 활성화 차원에서 인권위가 과감한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선 검찰의 한 검사도 "최근 법원의 판결 경향으로 볼 때 국보법은 이미 실효성을 거의 상실했다"며 폐지 권고를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개정, 폐지, 대체입법 등 의견이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완전폐지를 권고하고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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