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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합천군 쌍책면 잠미 느티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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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합천군 쌍책면 잠미 느티나무숲

입력
200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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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쌍책면의 황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법성정이라 불리는 작은정자가 있다. 여기에 이런 글이 있다. ‘강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강둑 절벽 위에 정자가 있고, 그 느티나무 숲에는 말 백 필을 맬 수 있으며, 느티나무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서 햇빛이 새어들지 않으니, 여름이면 장날처럼 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식혔다.이 정자에서 법성공이 후배들에게 학문과 예절 가르치기를 낙으로 삼았기에 수백년이 흐를 동안 풍우가 침노하지 않고, 강물이 침식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이 보살피는 명당이요, 성지이다.’

가야시대의 유적들이 지금도 간간히 발견되는 이곳에 가는 길은 경북 고령과 연결된 907번 지방도로가 전부이다. 겨울이면 눈 때문에 수시로 막히는고갯길 두개를 넘어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 물가에 쌍책면 성산리가 있다.

가야시대의 무역선이 낙동강을 따라 올라와 짐을 내렸던 이곳은 합천댐으로 인해 물이 줄어 그때의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정자 아래에는 낚시터와넓게 펼쳐진 명사십리가 있었고 강둑에는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고한다.

600여 년 전 문화 류씨 법성공 유맹지(柳孟智)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이곳에 심은 것이 시작이었는데, 지금은 몇 그루의 느티나무가 쓰러진 그루터기와 뒤섞여 남아 있다.

숲이 위치한 곳은 황강의 강폭이 넓어지면서 굽이치는 곳으로, 강물의 흐름이 이 절벽에 부딪힌 후 오른쪽으로 피해간다. 이곳에 숲을 만들어 절벽의 훼손을 막고 넓은 들판을 큰 물로부터 보호한 법성공은 숲의 중요성을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재치 있는 글귀를 법성정 안내문에 남겨놓았다.

후손들 가운데 ‘훌륭한 사람이 나오면 이곳에 나무를 더 심을 것’이라고권해 나무심기를 일깨웠고, 나무를 심고 가꾼 ‘공덕은 백년 후에나 나타날 것’이라고 하여 오랫동안 보살피고 가꿀 것을 가르쳤다.

‘잘 가꾸어진 나무는 뿌리가 굳게 내리고 가지와 잎이 옆으로 무성하게 되어, 훌륭한 사람이 주위에 인덕을 베푸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라고 비유한 것이다.

나무심기와 가꾸기를 강조하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후손들의 실수를방지하기 위해 ‘나무 베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이 정자나무의 잎사귀 하나 가지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말 것을 강물에 맹세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후손들에게 강물에 맹세하라고 한 이유는 숲 관리의 목적이 깨끗한 강물을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20여년 전까지도 느티나무 바깥쪽 강변 모래땅에 대나무 숲이 함께 있어 느티나무 숲과 함께 강둑을 이중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 동안 느티나무를 더 심을 훌륭한 후손이 많았을 텐데 조상들의 지혜에대한 헤아림이 약했던 탓인지 오히려 인근 학교를 위해 대나무 숲은 사라지고, 무성했던 느티나무는 노쇠하여 절벽 보호는커녕 도리어 강둑에 세워진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숲의 쇠퇴가 안타까워 문화재로 지정하였지만 인접지역에 대한 개발제한으로 숲을 지켜왔던 문화 류씨 문중과 마을주민사이에 반목만 초래하여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있다.

수백 년 동안 선조의 지혜와 자연의 순리가 가꾸어 주었던 ‘생활속의 아름다운 마을숲’은 무관심과 막연한 범람의 두려움, 그리고 생활과의 괴리로 인해 스스로 벽속에 갇힌 ‘박제된 숲’이 되어 버렸다.

물이 줄은 강변 모래사장에는 언제부터인가 혼자 힘으로 자란 듯한 버드나무들이 콘크리트 벽에 갇힌 늙은 느티나무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래도 늙어가는 느티나무들 사이에 최근에 심은 듯한 젊은 느티나무 한두 그루가 법성선생의 유적비와 나란히 서있어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을 품게 한다.

/권진오ㆍ국립산림과학원 박사alp96jk@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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