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심신을 괴롭혔던 무더위도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치니 자취를 감췄다.가는 여름이 실감난다. 여름의 끝을 보기 위해 서해로 향한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암. 바위 위에 지어진 자그마한 암자 주위로 감도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해넘이는 가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한 상징적인 통과의례로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정작 아름다운 일몰은 여름이 제격이다. 대지를 뜨겁게 달군 태양이 수면 아래로 잠기면서 뿜어내는 붉은 열기는 겨울의 일몰이 따라올 수 없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장엄한 일몰을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간월암은 동양 최대의 간척사업 지역인 천수만변에 자리잡은 높이 5m, 폭15m 규모의 바위언덕이다. 썰물때는 육지가 되지만 밀물때는 섬으로 변한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하루에 2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다.
간월암을 찾아 나선 것은 태풍 메기가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던 19일 오후.태풍이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구름과 일몰을 보고싶어서였다.
간월도 앞 선착장에 마련된 횟집촌을 지나 오후 2시쯤 간월암에 들었다. 손님을 반기는 듯 활짝 열려있는 철문을 통해 암자에 드니 아담한 도량(道場)이 나그네를 반긴다.
간월암의 구조는 간단하다. 대웅전과 산신전, 기도각 등 3~4개의 건물이 고작이다. 기도각 너머 가로로 뻗은 안면도가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고, 뒤로는 충남 홍성군의 남당항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간간이 갈매기가 관광객의 방문에 화답하듯 홱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절의 모습은 고요함에 잠긴 정물화를 연상케 한다. 대웅전 뒤로 둥실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은 그림을 완성하는 소도구이다.
문득 지난날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 가본 낯선 곳에서 느끼는 익숙함을 뜻하는 데자뷰(deja vu) 현상을 이 곳에서 경험하다니.
절에서 나와 갯벌에 서서 다시 암자를 바라 보았다. 데자뷰가 아니었다. 분명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이역만리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타나롯(Tanah Laut)사원과 너무나도 닮았다.
인도네시아어로 타나는 땅, 롯은 바다를 의미한다. 썰물이면 땅에 속하고, 밀물이면 바다에 속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간월암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육지 끝에 면한 자그만 암자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암자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일몰이 연출되고,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것도 같았다. 심지어 암자의 생김새까지도 흡사했다.
타나롯에 사원을 지은 이는 16세기 인도네시아의 힌두교의 이름난 고승이었다고 한다. 간월암을 창건한 스님 역시 뛰어난 고승중 하나인 무학대사였다. 조선개국의 일등공신인 무학대사가 이 곳에 뜨는 달(月)을 보고(看)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한국판 타나롯사원을 나온 시간은 오후 4시 쯤. 속을 드러냈던 갯벌에 물이 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미를 장식할 일몰까지는 3시간 가량의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서두른다면 인근 안면도나 남당항을 둘러본 뒤 돌아와도 남을 시간이다. 남당항으로 향했다.
천수만 A지구 간척지를 지나 홍성군 남당항에 발을 들였다. 멀리 안면도가길다랗게 감싸고 있어 파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항구로서 최적의입지조건을 갖춘 곳이다.
해변가 횟집촌에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고깃배를 비추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비춰진다. 늦여름 오후 한때의 목가적인 풍광이다.
밀물의 간월암은 이제 육지에서 섬으로 변해있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아쉽지만 간월도 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각도상으로 볼 때, 갯벌 한가운데 서야 가능하지만 이미 물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간월도의 진정한 해넘이는 해가 진 다음부터이다. 여름내 달궜던 태양빛이 서산으로 넘어가면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아 섬 전체를 발갛게 달궈놓는다.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불빛마저도 모두 쏟아부으려는 듯, 하늘을 물들인 붉은 노을은 불과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사그라져갔다. 여름도 그렇게 바다너머로 사라졌다.
/간월암(서산)=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나와 서산A지구 방조제 방향으로 간월암을 지나자 마자 좌회전하면 간월암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에서 나온 뒤 32번 국도를 따라 서산을 지나 649번지방도를 이용, 부석을 거쳐 서산방조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천안IC에서 나와 아산, 예산을 지나 29번 국도로 덕산, 해미, 부석을 거쳐 서산방조제로 진입하면 된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운산, 음암, 해미 등 서산 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1시간40분만에 도착한다. 여기서 간월암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02)521-8550.
#먹을 거리
갯벌이 많은 곳이라 갯벌에서 채취한 재료를 이용한 음식이 먹을 만 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어리굴젓. 무학대사가 이 곳에서 나는 어리굴로 담은 굴젓을 태조 이성계에게 진상했다고 전해진다.
어릴 때 바위에 붙어있던 굴이 자라면서 갯벌에 떨어지는데, 바닷물이 빠지는 낮 6~7시간 동안만 햇볕을 받아 굴알의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굴알에 붙은 미세한 털에 양념에 잘 배어 맛이 더욱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돌솥밥에 간월도 근처에서 자라는 굴을 넣은 영양굴밥(사진)도 별미. 1인분 8,000원. 굴파전 1만원. 간월도 인근에 굴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늘어서있다. 간월도 맛동산 (041)669-1910, 간월도 영양굴밥집 663-7776,오뚜기 횟집 662-2708.
#잘 곳
간월암 인근에는 고급 숙박시설이 없다.
서산 시내에도 호텔급 숙소는 없고 대부분 장급여관이다. 계림장여관 (041)665-5255, 창리장여관 664-1369, 유니콘모텔 669-4466 등. 간월민박 662-0895, 천수만민박 663-7572, 현대민박 662-2724 등 민박집도 있다.
서산과 인접한 태안군 안면도에는 큰 숙박시설과 깔끔한 펜션이 많으니 이곳과 연계하는 것도 좋다. 오션캐슬리조트 (041)671-7000, 비치캐슬 673-9948, 안면프라자호텔 673-074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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