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해철(가명·11)군. 아버지가 카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 가출한 뒤 어머니 여동생(4)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이 불황에 취직이 될 리가 만무했다. 고통 속에서 주위의 도움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해철군 가족 앞에 아버지가 술에 취한 모습으로 불쑥 찾아온 것은 수개월 전. 다짜고짜 어머니를 때리고 해철군에게도 온갖 행패를 부린 뒤 나가버렸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실시한 심리검사에서 해철군은 정서가 매우 불안정하고 강박증과 공격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밤에 잠을 잘 때 식은땀을 흘리고 악몽을 꾸는 일이 많다고 한다. 어머니는 "해철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큰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경기가 바닥을 기는 가운데 가족해체에 따른 아동학대가 크게 늘고 있다.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불화를 겪거나 별거 또는 이혼하는 부부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아이들에게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전국 36개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돼 학대 판정을 받은 사례는 1,59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나 늘어났다. 17개 소규모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추가로 설치된 것이 급증의 주요 요인이지만 관계자들은 경기 악화로 가정이 피폐해진 탓도 크다고 입을 모은다. 상반기 전체 아동학대 사례의 45.5%가 편부모 가정에서 발생한 것은 이런 사정을 잘 말해 준다.
지난 3월 경기지역의 한 병원 응급실에 김모(6)양이 실려 왔다. 얼굴과 등, 다리 등 신체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고 폐렴과 간 기능 악화, 빈혈 증상도 있었다. 몸무게는 10㎏으로 아사 직전의 상황이었다. 병원측이 아동학대로 의심해 신고했다. 부모는 학대 사실을 부인했지만 김양의 오빠(7)는 "엄마가 몽둥이로 막 때렸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수사로 아버지가 구속됐다. 이 역시 가정 불화가 원인이었다.
학대받는 아이들은 거의 매일 같이 매를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동학대예방센터 집계에 따르면 학대빈도는 거의 매일이 32.7%, 2∼3일에 한번이 14.2%였다. 학대 유형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학대를 동시에 하는 중복학대가 38.2%나 됐고 방임(34.3%), 신체학대(10.6%), 정서학대(8.5%), 성학대(5.3%) 등도 많았다.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예방센터를 확충하는 한편, 학대 아동의 일시보호·치료와 부모 상담을 담당하는 아동보호종합센터를 하반기 중 전국 10곳에 설치할 방침이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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