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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95>워싱턴 放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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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95>워싱턴 放火

입력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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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내린 대륙봉쇄령의 여파로 1812년 미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인구 8천 남짓의 조그만 도시였다. 백악관을 비롯한 몇몇 공공 건물들이 들어서 있기는 했으나, 이 도시는 그 때까지 군사적 방어 수단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1814년 8월24일 4,500여 명의 영국군 선발대가 워싱턴으로 밀고 들어가자, 시민들은 급조된 민병대를 통해 잠시 저항의 제스처를 취하다가 이내 달아나버렸다. 영국군은 거의 무혈로 워싱턴에 입성했다.영국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옛 식민지의 수도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건설 중이었던 의회 건물을 첫 표적으로 삼은 방화는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비우고 달아난 백악관과 재무부·국무부 건물을 비롯한 관공서들로 이어졌고, 이내 상점과 일반 주택들도 화염에 휩싸였다. 영국군에게 아무 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튿날 1백여 명의 영국군이 죽거나 다쳤는데, 이것은 미군이나 워싱턴 시민들의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군 스스로 불을 지른 미군 병기창이 폭발하면서 그 주변 건물들이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사기를 잃기 시작했고, 그 날 밤 미군이 진격해오자 서둘러 이 도시를 떠났다.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 점령과 방화는, 2001년의 9·11 테러 때까지는, 미국 역사상 외국 무장세력에 의해 본토가, 더구나 수도가 공격 당한 유일한 사건이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2백수십 년 동안 무수한 전쟁을 치러낸 말 그대로의 '전쟁국가'지만, 자국 영토 한복판에서 수행한 전쟁은 남부와 북부 사이의 내전을 제외하고는 이 1812년∼14년의 미영전쟁이 유일하다. 영국을 겨냥한 프랑스의 대륙봉쇄령과 이에 맞선 영국의 역봉쇄령에 미국이 휘말리면서 일어난 미영전쟁은 1814년 12월24일 벨기에의 헨트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돼 마무리됐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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