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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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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사장 인터뷰

입력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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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58) KBS 사장만큼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다. 지난해5월 취임 이후 ‘송두율 다큐’ 파문, 탄핵방송 편파시비에서 최근 북한 혁명가 ‘적기가’(赤旗歌) 방송 파문까지.KBS를 둘러싼 논란의 한 가운데는 늘 그의 ‘이념 문제’가 놓여있었다. 팀제 도입과 지역국 통폐합 등 대대적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내부 반발에부딪히기도 했다. 정 사장은 “KBS나 우리 사회가 폐쇄에서 개방, 집중에서 분산, 독점에서자유경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면서 일부 신문의 ‘정치적’ 비판에 대해 “병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병든 언어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취임 후 첫 개별 인터뷰에 응한 그에게 KBS의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미디어 포커스'에 '적기가'가 배경음악으로 나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실수였다. ‘적기가’인 줄 아무도 몰랐다. 나도 처음 들었는데 원곡은독일 민요 ‘오 탄넨바움’으로, 영국에서 가사를 바꾼 노동가요 ‘레드 플래그’가 일본을 거쳐 북한에 유입됐다고 한다.

사실 간첩이 아닌 다음에야, 멜로디만 듣고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캐나다에서 고교, 대학을 나온 음악담당 프리랜서가 곡목도 모르고 쓴 것이다.”

-'적기가' 파문처럼, 중간 거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게 팀제의 부작용이란 지적도 있다.

“내부에서도 팀제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그것 봐라’고 비판한다.사전심의를 거치는 등 검증을 했다. 정밀하게 걸러내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팀제를 도입한지 2주가 지났다. 성과가 있는가. 직장협의회 결성 등 반발도 적지 않은데.

“변화를 피부로 느낄 만큼 굉장히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일례로 ‘창가족’(창쪽에 앉아 자리만 지키는 간부)이라 불리던 분들이 다 현업에 배치돼 후배들과 똑같은 책상에 앉아 일하는데, 굉장히 떳떳해 한다.

적절한 평가보상 시스템을 갖춰,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인 조직을 만들겠다. 또 사내에서 비판이 나오는 것은 그 조직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다만직장협의회가 사장에 대해 정략적으로 지독하게 비판을 해대는 신문을 이용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작태다. 비판세력이 되려면 건강하고 떳떳해야한다.”

-팀제 도입으로 간부는 1,121명에서 184명으로 줄었지만, 전체 인원에는 변화가 없어 '여전히 KBS는 공룡'이란 말도 있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 인력과잉은 아니다. 특히 제작인력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미국 CBS의 시사매거진 ‘60분’은 15분짜리 리포트 하나에 딸린스태프가 무려 20명이다.

BBC ‘파노라마’에 대한 지원도 대단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 PD들은 정말천재들이다. 다만 새로운 인력 충원이 필요한 분야에서 물갈이할 수 있는퇴출 구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규를 어겨 해임하지 않는 한 아무리 무능해도 쫓아낼 방법이 없다. 그런의미에서 ‘철밥통’이다. 이는 KBS뿐 아니라, 공기업과 공무원 사회의 공통문제이다.”

-KBS는 사장이 누구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수십년 동안 사장이 ‘제왕적 권력’을 누려온 조직이라 그런 말이 나올법도 하다. 바로 그걸 개혁해 구성원의 창의력을 최대한 폭발시켜주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직원들이 이미 많은 자율의 맛을 봤고 시스템도바뀌었다.”

-시사ㆍ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 시비가 자꾸 불거지는 건 문제 아닌가. 일부 신문에 대한 비판도 지나친 듯 한데.

“영국 BBC나 미국 PBS도 보수파들로부터 좌편향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곤 한다. 상업방송과 달리 공영방송에는 보수, 진보를 떠나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프로그램도 그런 시각에서 제작하다 보니 보수쪽에서는 못마땅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보다 성숙하고 세계 무대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인 만큼, 그걸 가로막는 언론의 폐해도 당연히 지적해야 한다. 지나친 경품 뿌리기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약탈적 행위를 그대로 두자는 것인가. 권력이 소수에 집중돼있고 의사결정구조도 폐쇄적인 일부 신문의 사주체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신입사원 채용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필수화한 것이 눈에 띈다.

“먼저 사회의 차별구조 세습을 공고하게 하는 영어 중심 채용 관행을 바꾸고 싶었다. 강남 8학군 출신, 해외연수 다녀온 부잣집 자식들이 영어를당연히 잘한다. 기자도 영어 중심으로 뽑으니 부유층 출신이 많아 버스, 지하철 등 서민을 위한 기사가 별로 없다. BBC 영어가 영국 표준어이듯이KBS 한국어가 우리말 표준어가 되겠다는 뜻도 있다.”

-2TV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절대 안된다. 민영화하면 가져갈 수 있는 데는 재벌밖에 없다.

또 2TV가 떨어져 나가면 KBS의 영향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외국의 공영방송도 지상파 채널을 2, 3개씩 갖고 있다. 보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1TV는 좀 엄숙하게 나가고, 2TV는 건강한 웃음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열악한 외주제작환경 개선에 KBS가 앞장서야 하지 않나.

“취임 후 내부시스템 개혁에 온 힘을 기울여왔는데, 앞으로는 난시청 해소와 함께 외주제작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둘 방침이다. 곧 구체적 방안이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점은 디지털과 문화상품이다. 콘텐츠의 질을 높이려면 외주제작사들이 건강해야 하는데, 현재는 몇 곳을 빼고는 자본과 인력 모두 열악하기 그지없다. 정부 역시 외주전문 채널 도입에 앞서 이들이 제 발로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위성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의 지상파 재전송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위성DMB는 유료서비스다. MBC, SBS와 달리 우리는 지분 참여를 하지 않았고, 지상파 채널 재전송에도 반대한다. 이동수신은 지상파DMB로 해결할수 있다. 이미 버스에 장비를 달아 시험 중인데, 화질이 매우 깨끗하다.

지상파DMB는 반드시 위성DMB에 앞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연내에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

-KBS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올인' 한 듯하다. 왜 이순신인가. 원작인 김훈의 '칼의 노래'를 노 대통령이 극찬한 것과 연관짓기도 하는데.

“이순신은 한마디로 원칙주의자다. 그래서 적도 많았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급변하고 여러 가치가 부딪치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그 시대도 비슷했다. 동북아 정세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요즘, 원칙과 나라사랑에 극진했던 거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11월 방송 예정인, 장보고의 삶을 그린 ‘해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연주를 무작정 미워하는 사람들이 지어내는 말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희정기자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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