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리스트 케네시아 베켈레(에티오피아)의 표정은 차분했다. 400m 그는 기쁨을 만끽하는 대신 누군가를 기다렸다. 22초 후. 하일레 게브르 셀라시오(31ㆍ에티오피아)가 지친 표정으로 결승점에 도착했다. 베켈레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었다. 지친 스승은 베켈레를 포옹하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베켈레는 어린 시절 셀라시오의 우승 모습을 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후 둘은 함께 훈련했고 셀라시오는 베켈레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했다.‘청출어람(靑出於藍)’. 베켈레가 스승과 함께 뛴 올림픽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장거리 제왕으로 탄생했다. 그는 21일(한국시각) 벌어진 육상 남자 10,000m결승에서 실레시 시히네(에티오피아ㆍ27분9초39), 제세네시 타데세(에리트리아ㆍ27분22초57)와 접전을 펼치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폭발적으로 스퍼트, 27분5초10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승 셀라시오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서 세운 27분7초34를 깨뜨리면서. 이번 경기는 둘이 함께 뛴 마지막 경기. 셀라시오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마라톤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베켈레는 떠나는 제왕의 화려한 마지막을 위해 속도를 늦춰 지친 셀라시오에 페이스를 맞추기도 했다. 베켈레는 여세를 몰아 5,000m까지 석권할 각오다. 지금까지 두 종목을 모두 석권한 선수는 4명 뿐. 1980년 미르투스 이프터(에티오피아) 이후에는 난공불락이다. 경기가 끝난 뒤 베켈레는 “나는 5,000m를 위해 충분한 힘을 비축해 뒀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