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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죽은 독재자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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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죽은 독재자와의 전쟁

입력
2004.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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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오는 2007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면, 그리고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대다수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그를 지지했든 반대했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을 맞는 심정은 착잡할 것이다.국제사회는 또 그의 당선을 어떻게 볼까. 인도의 인디라 간디, 파키스탄의 부토,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필리핀의 아키노와 아로요 등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으로 등장한 아시아의 여성지도자들을 떠올리며 한국 정치도 그런 패턴을 못 벗어나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자랑스런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표를 '유신의 딸'이라고 부를 생각은 없다. 그가 유신에 책임질 일은 없다. 그러나 그가 '독재자의 딸'인 것은 분명하다. 1961년부터 79년까지 혹독하게 국민을 다스렸던 박정희 대통령과 박 대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그의 오늘은 아버지의 후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누구에게 투표하느냐는 상대적인 것이다. 대선에 나온 후보들 중에서 박근혜씨가 가장 낫다면 그를 찍게 될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이 연좌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2004년 여름 박 대표를 둘러싼 상황은 대개 이 정도다. 왜 하필 박근혜냐는 반감도 만만치 않지만, 다른 후보들이 그보다 못할 때는 그를 안 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정국을 주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예상되는 대선 후보들은 모두 일거일동이 관찰 대상이 된다.

지금 상황은 이 정도인데 박근혜를 꺾으려는 여권의 집념은 왜 그리 집요할까. 대선이 3년이나 남았는데, 여권은 지금 대선 기간인 것처럼 박근혜 공격에 총력을 쏟고 있다. 박근혜와 싸우는 게 아니라 25년 전에 죽은 그의 아버지와 싸우고 있다.

죽은 독재자와 싸우는 살아 있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초라하다. 그들은 억지를 쓰고 무리를 하고 불필요한 적의를 불태운다. 친일청산이라는 대의명분을 세웠는데, 박정희가 주요 목표임을 자기들 입으로 폭로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이 대통령만의 공로가 아니라는 주장은 옳지만, 경제를 이끈 박정희의 리더십을 과소평가하려는 조바심을 읽게 된다.

유권자들이 과연 여자를 대통령으로 뽑겠느냐, 박근혜에게 '애국심' 이상의 통치능력이 있느냐는 점 등을 들어 박근혜 대권론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것이 박 대표의 약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얼마든지 상식을 뒤집는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던 이회창씨가 '대쪽'이미지 하나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 노무현 후보가 '바보 노무현' 이미지를 내세워 모험에 가까웠던 대선 도전에서 승리한 것 등은 모두 예상을 깬 역전이었다. 이유는 정치부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갈망이 '대쪽'과 '바보'를 향해 폭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폭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 대표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단조롭고,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안정된 이미지에 끌리고 있다.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고, 예절과 격과 상식을 지키는 이 나라 맏딸의 이미지가 어필하고 있다. 정치판의 무례와 몰상식에 절망하던 사람들은 그의 미덕에서 위안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수준이 낮다고 개탄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수준이 정치인들보다 낮지는 않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촉각을 갖고 있다.

독재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던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은 역사의 순리다. 그 민주세력이 25년 전 세상을 떠난 독재자와 그의 딸에 위협을 느낀다면 자신들의 역량 부족을 통탄하고 또 부끄러워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딸을 당 대표로, 대선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총칼을 들고 나서지 않은 이상 박근혜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죽은 독재자와 싸워서 이긴들 국민의 지지를 잃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싸움인가.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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