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올림픽 축구팀이 21일 4강에 오르는 드라마를 연출, 전쟁의 혼란과 상처에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감격의 눈물을 선사했다.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라크 축구팀의 믿기지 않는 연승 행진에 이라크 국내는 물론, 사담 후세인 독재에 쫓겨 망명한 이라크인들까지 이라크인이란 자부심에 한 마음이 됐다.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 한방으로 호주를 누르고 준결승에 진출한 이날 밤 이라크 전역은 환희로 들떴다. 이슬람과 기독교,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족과 쿠르드족의 구별도 없었다. 모두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며 춤을 췄고, 기쁨의 총성과 자동차 경적이 대포와 기관총을 대신했다. 이라크인들은 "어제는 비탄에 잠겼지만 이젠 행복하다" "축구는 마지막 희망이다"라며 감격했다.
해외 망명객들도 그간 설움을 한 번에 털어냈다. 이날도 경기장엔 유럽 교민 1,000여명이 모국의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스웨덴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로아에 토마는 "망명 뒤 낳은 아들에게 이라크를 보여 주려고 8일이나 차를 몰고 왔다"며 눈물을 쏟았다. 미국과 호주에서 숨죽이고 살던 이라크인들도 소리 높여 '이라크'를 외쳤다. 이라크의 대표적 채팅 사이트인 '알이라키'(www.alilaqi.org)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공동응원을 한 얘기, 호주 시드니에서 밤새도록 수백명이 거리 행진을 한 소식 등이 줄줄이 올랐다.
외신들도 독일인 감독이 안전을 이유로 도망갈 정도의 열악한 상황에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기적"을 이뤘다고 박수를 보내며, 이라크 축구팀의 4강 진출이 이라크 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AP통신은 4강전 경기장 이름인 '이라크리온'(Iraklion)이 '이라크 사자'(Iraq lion)가 이길 징조 같다는 보도까지 했다.
이라크 축구팀의 선전은 무엇보다 뜨거운 조국애가 밑바탕이 됐다. 우선 선수의 절반 이상이 반미 저항세력의 근거지인 바그다드의 사드르시티, 나자프, 팔루자 출신이다. 선수들은 "축구선수만 아니면 총을 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가 또 다른 방식의 성전인 셈이다.
그런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축구팀의 승리를 이라크전 정당성 홍보에 이용하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주 이라크 축구팀의 환상적 선전은 미국 덕이란 말을 했고, "올림픽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자유국가가 돼 참여한다"는 대선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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