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 깍까이기진 글ㆍ그림
소금창고 발행ㆍ7,800원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 골라주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워낙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으니 그럴 밖에. 할 수만 있다면 직접 그리고 써서 책을 만들어보면 좋을 텐데, 솜씨가 없어서 영…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부모라면 ‘박치기 깍까’를 보고 용기를 얻으시길. 한 평범한 아빠가 두 딸을 위해 쓰고 그린, 소박하지만 사랑이 가득 넘치는 어여쁜 그림책이다.
지은이는 초등학생, 중학생 두 딸을 둔 물리학자 김기진(44ㆍ서강대 교수)씨. 공부하느라 아이들이 어릴 적 10여년 동안 외국에서 살 때, 아이들이 우리말을 잊지않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직접 그림동화책을 그려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들은 그렇게 아빠의 그림책을 보며 한글을 깨쳤다.
굵은 사인펜으로 쓱쓱 그려낸 그림이 꼭 만화 같다. 주인공 깍까와 동생 꼭꼬, 엄마의 모습은 머리털은 하나도 없는 땡그란 달걀머리에 팔은 없고 다리만 달랑 그려넣어 귀여운 달걀귀신처럼 보이는데, 그 서투른 듯 단순함이 오히려 더 정겹다.
색칠도 거의 안 해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의 세련된 솜씨와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 안에 담뿍 밴 아빠의 사랑만큼은 최고다.
깍까는 박치기를 잘 하는 아이다.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여기도 쿵, 저기도 쿵 들이받아 이것저것 망가뜨리는 바람에 엄마한테 야단을 맞곤 한다. 엄마는 동생 꼭꼬가 깨뜨린 수박도 깍까 짓인 줄 알고 혼낸다.
“왜 엄마는 나만 미워하지?” 화가 잔뜩 난 깍까는 하늘을 향해 힘껏 박치기를 한다. 그런데, 어? 몸이 붕 솟아오르더니 사막 한복판에 뚝 떨어졌지 뭐야. 그렇게 해서 깍까의 긴 여행이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하늘을 향해 박치기를 하지만, 그 때마다 엉뚱하게도 사막으로 툭, 남극으로 휙, 밀림으로 훌쩍, 바다로 풍덩. 가는 곳곳 새로 사귄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깍까는 박치기 실력으로 구해준다.
펭귄네 마을로 떠내려오는 커다란 빙산을 들이박아 깨뜨리고, 원숭이가 갇힌 우리도 박치기로 ‘에잇, 빠직!’ 부수고, 거북이를 잡아먹으려는 상어 옆구리도 콱 들이받고…
집에서는 박치기로 혼날 일 밖에 없었는데 친구들을 도울 수도 있다니, 참 신나는 일이다. 깍까는 마침내 지나가던 배를 얻어 타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온다.
자랑스런 마음으로 가슴 가득 추억을 안은 채. 깍까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엄마, 나는 말썽쟁이 박치기 대장이 아니에요. 박치기로 얼마나 멋진 일을 했는데요.” 라고.
박치기로 세계일주를 하다니, 무척 재미있는 상상이다. 엄마한테 야단맞고 서러운 박치기 대장을 어깨가 으쓱하게 만들어준 줄거리는 아이들 마음을 읽고 다독다독 품는 아빠의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보고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림책이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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