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린아이, 인간클라이브 브롬홀 지음/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발행/2만2,000원
‘우리는 모두 몸집만 커다란 아기에 불과하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진화의 정점에 있다는 인간이, 지구탄생 이후 어느 생명체보다 우월한 능력으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이 고작 아기의 상태라니. 그것도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이 이미 적수로 취급하지 않은 유인원의 태내 형체가 바로 지금 인간의 모습이라니.
동물학자이며 자연사 다큐멘터리를 여러편 제작한 영국의 클라이브 브롬홀은 일견 도발적인 이런 주장을 해부학적으로, 행동학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나가고 있다.
나아가 남자들이 왜 여자들의 큰 가슴에 유독 열광하는지, 여자들은 왜 꽃미남에게 끌리는지, 번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동성애는 또 왜 있는지 등을 과감하게도 ‘인간의 유아화’라는 단 하나의 코드로 설명해나가고 있다.
탐색은 ‘인간의 몸은 너무 괴상하다’ 데서 시작한다.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영장류에 속하는 181종의 생물들 중 뒷다리로 직립 보행하는 동물은오로지 인간뿐이다.
머리 꼭대기, 겨드랑이, 생식기 주변 등 몇 군데를 제외하고 몸에 눈에 띌정도의 털이 없는 동물 역시 인간뿐이다. 얼굴 골격의 굴곡이나 치아가 작고 아래턱이 짧다는 것도 특이하다. 영장류 중 암컷이 젖을 생산하지 않을때에도 항상 가슴이 부풀어 있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며, 인간 남성의음경에 뼈가 없다는 점도 다른 영장류와 다르다.
지나치게 커다란 두개골, 육중한 뇌는 진화의 승리라 치더라도, 나머지 모습을 다른 종과 차별된 고등진화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털이 없는 것이, 아래턱이 약해지고 송곳니가 무뎌진 것이 과연 인간의 생존에 더 유리할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특징이 해부학적으로 볼때 유인원의 태아와 똑같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보노보를 제외한 모든 유인원들이 네 발로 걷고 그에 맞는 신체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태아는 골반구조며 척추의 상태, 발가락의 모양이 모두 직립보행 구조에 맞는 형태이다.
유인원들은 태어난 뒤 커가면서 이런 모습이 네발 보행에 맞도록 바뀐다는것이다. 왜 그리 됐는지는 저자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인간의조상이 유인원의 아기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성장 유전자가 억제되는‘실수’로 일어났으며, 당시로는 별로 이득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직립보행으로 달리는 속도가 느려진 데다, 털이 적고 연한 피부 때문에 인간은 분명 육식 동물에게 너무도 입맛 나는 먹잇감이다. 그래서 살아남기위해서 인간은 다시 유아적인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했고, 무리를 탈없이 유지하기 위해 공격성과경쟁보다 사교성과 협동성을 몸에 익혔다.
영장류 새끼들에게서 전형으로 나타나는 호기심과 놀이 또한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절친한 동물인 가축류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는 아기 늑대와 매우 유사한 몸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어울리면서 보이는 거의 모든 행동이 유아기 늑대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은 중반을 지나면서 인간의 행동에 대한 관찰로 옮겨간다. 브롬홀의 설명은 어느 대목이나 약간의 상상력이 발휘되지만, ‘유형성숙(幼形成熟)’을 키워드로 한 인간행동 유추는 그럴 듯하다.
남자는 여자의 몸과 행동이 성적 대상인 동시에 어머니 같은 특징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과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특징과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아이 같은 특징을 갖기 바라는 것도 유아화 현상의 일부다. 젖이 나오지 않는데 늘 풍만한 여자의 가슴은 같은 결과이다.
동성애를 비롯해 마조히즘, 근친상간, 성전환 등도 성숙한 이성애에 눈 돌리지 못하거나, 유아적인 성애의 요소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대신 이들은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강하고, 놀이를 즐기며, 남들보다 더 창의로운 성향이 있다.
한가지 논리로 인간행동 전반을 설명하는 데는 의구심을 가질만하지만, ‘털없는 원숭이’를 써 인간행동을 예리하게 분석한 데즈먼드 모리스가 “이 책을 읽은 후에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훨씬 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일 것”이라고 평가한 대로 충분히 설득력 있고, 게다가 적잖은 재미까지 갖추었다.
/김범수기자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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