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인가, 본색인가.”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젤 밀러(72ㆍ조지아)가 1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공화당 전당대회(30~9월2일)에서 기조연설을 맡기로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젤의 깜짝쇼’(zell zinger)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정가가 떠들썩하다.
민주당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선언하는 기조연설자가 된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 게다가 밀러는 1992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선 후보 지명전당대회 기조연설자였다. 장소도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으로 같다. 그는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우유부단하고 현상유지만 하려는 소심한 자’ ‘오감이 꽉 막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자’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공화당은 중도 민주당원인 밀러가 뒤늦게 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회심(悔心)’으로 홍보했다. 보통 미국인이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주류 일탈적’좌파 정책을 거부하고 부시의 따뜻한 보수주의에 호응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얘기. 밀러는 “케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부시가 현재 미국에 딱 맞는 지도자라서 지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밀러가 원래 ‘박쥐 같은 인간’(zigzag zell)이라고 폄하했다.역사학자 출신으로 90년 이후 조지아주의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역임한 그는 2001년에는 케리를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그러나 표결에선 거의 부시 편을 들어 “이름만 민주당원”이라는 비난을받아왔다. 지난해에는 민주당을 비난하는 ‘보수적 민주당원의 양심’이라는 자서전을 펴내 민주당원들로부터 기회주의적 변절자라는 거센 반발을 샀다.
올해 말 정계를 은퇴할 그가 마지막으로 비주류인 남부 민주당원의 불만을 대변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루즈벨트, 케네디, 존슨, 카터 전 대통령을 거치며 굳어진 민주당 내 진보주의, 소위 ‘루즈벨트 민주당원’들이민주당을 오도하고 있다고 믿는다. 밀러는 차라리 공화당으로 가라는 비난에 “민주당이 군사력, 미국적 가치 등을 믿는 남부인을 버린 것이지 난 변한 게 없는데 내가 당적을 왜 바꾸냐”고 반박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