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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성폭행 유죄/의미와 외국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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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성폭행 유죄/의미와 외국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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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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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관계를 거부하는 아내를 폭력으로 추행한 남편에 대해 법원이 형법상 '강제추행치상죄'를 인정한 것은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은 종전의 법원 판례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최완주 부장판사는 "결혼한 부부가 배우자의 성 관계 요구에 응할 의무는 있지만 그렇다고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배우자가 원치 않는 성 관계를 강제할 수도 없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부부 사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폭 넓게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강간에도 준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성행위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그동안 법원은 부부 사이에는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1970년 대법원은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에 대해 "사건 당시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면 남편이 처를 강제로 간음했다 해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를 강간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법원은 그동안 '부녀'를 '결혼 외 관계의 여성'으로만 해석해 왔고 별거나 이혼상태가 아닌 정상적인 부부간에 강간죄를 적용해 남편이 기소된 사례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별거 등 비정상적인 결혼상태 여부와 상관없이 일방이 폭력을 써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추행을 시도했다면 불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만 "부부간의 단순한 신체접촉까지 문제 삼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심각한 폭력이 아닌 단순 협박 같은 경우에는 개별적 사건에 따라 기술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구 선진국을 비롯해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법원은 1984년 결혼한 여성에게 처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혼인 증명서가 남편이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자격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기혼 여성도 미혼 여성과 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시했다.

영국에서도 94년 부부 강간을 처음 인정했고 강간죄의 성립 범위를 '혼인 외의 성교'로 규정했던 독일도 97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이 문구를 삭제,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다. 뚜렷한 법 규정이 없는 일본은 혼인이 실질적으로 파탄 난 경우에 한해 아내 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99년 유엔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아내 강간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여성계·시민단체 반응

여성계와 시민단체들은 아내를 강제로 성추행한 남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단을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특히 여성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부부간 강간 인정을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일 논평을 내고 "부부간이라도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에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성폭력상담소는 "그 동안 친족에 의한 성폭력 범위에서 배우자를 제외하고 부부간에 성 관계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 오는 등 결혼한 여성은 법적으로 독립적 인격체라기보다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돼 왔다"면서 "이번 판결은 여성인권 유린의 법 관행을 바로잡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유경희 '가족과 성' 상담소장은 "여성 단체들이 부부간 강간 법제화 등을 위해 추진 중인 성폭력특별법 개정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특히 강간이 형법에 규정돼 있어 개념을 바꾸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이번 기회에 강간 개념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부부간 동의 없는 성 관계를 모두 강간으로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폭력을 동원한 부부싸움 후 남편이 억압적 분위기에서 성 관계를 요구하는 것 정도는 강간이라는 내용이 개정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정책실장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인격권까지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가족 내에서 부인의 인격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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