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호러의 행진도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다. ‘페이스’로 시작해 ‘령’ ‘인형사’ ‘분신사바’ ‘시실리 2㎞’ 그리고 미스터리느낌이 가미된 ‘얼굴 없는 미녀’까지, 그리고 이번 주엔 ‘알포인트’와‘쓰리, 몬스터’가 관객들한테 선을 보인다.흥미로운 건 초반부엔 이른바 ‘정통’ 호러가 개봉하더니 뒤로 갈수록 약간의 변종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 ‘분신사바’까지를 ‘익숙한 호러’라고 한다면 ‘시실리 2㎞’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공포는 여름 막바지에 이르러 독특한 맛을 보여주고 있다.
‘알포인트’(사진)는 1972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월남 괴담’이다. ‘로미오 포인트’, 줄여서 ‘알(R) 포인트’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메시지. 그곳에서 실종된 자들을 찾기 위해 9명의 수색대가 파견된다.
그들의 임무는 생사 확인. 하지만 그들조차 그곳에서 살아 돌아올지 의문이다. ‘알포인트’는 호러 판타지보다는 ‘있었을 법한 일’에 더 가까이 접근한다. 베트남 전쟁의 전장엔 수많은 미스터리와 불가사의한 일이 있었고, 종군기자의 리포트마저 가끔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알포인트’는 바로 그 지점, 즉 불가해한 사실이 핏빛 허구보다 더 무섭다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몇 가지 게임을 한다. 알포인트라는 곳은 어떤 사연이 숨겨진 곳이며, 난데없이 출몰하는 베트남 소녀의 정체는 무엇이며, 과연 수색대는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며, 그리고 죽은 자와 살아 남는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공포영화 ‘알포인트’는 보이지 않는 혹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적과 싸우는 인간 군상에 관한 영화다. 그러기에 그들은 헛것을 보며, 결국 광기에 젖어 들거나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 과정을 통해 감독은 인간 존재의 바닥까지 내려가려는 야심을 은근 슬쩍 내비치는데, 안타까운 건 이 영화가 호러의 장르 관습 속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점이며 그 부분이 관객을 약간은 혼돈스럽게 한다.
2년 전 ‘쓰리’에 이어 두 번째 시도되는 3국 프로젝트 ‘쓰리, 몬스터’에선 한국의 박찬욱,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프루트 챈이 만났다.박찬욱의 에피소드 ‘컷’은 감독의 악취미가 유감없이 드러난 단편. 마치감독 자신의 악몽을 투사한 듯한 ‘컷’에서, 어느 엑스트라가 영화감독에게 잔인하고 기묘한 방식으로 복수한다.
소품 버전의 ‘올드보이’? 임원희의 화려한 개인기가 돋보인다.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는 관객을 신비로운 시공간으로 인도한다. 꿈이 현실이되고, 시간이 멈춰버린 과거는 현재와 맞닿아 있는 세계. 그 안에 꿈틀대는 질투와 비밀의 드라마는 공포라기보다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다.
프루트 챈의 에피소드 ‘만두’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인육만두는 먹는 한 여자의 이야기. 그 재료(!)를 구하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이 영화의 설정은 꽤나 으스스하지만,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은 건 왜일까? 아마도 우리가 몸소 겪었던 ‘만두의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시 가장 공포스러운 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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