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전세 낸 전철을 타보신 적 있습니까?역마다 서야 할 전동차가 중간 역을 다 무시한 채 질주합니다. 1호선으로달리던 전동차가 어느 샌가 4호선으로 노선도 바꿔 달려갑니다.
노선도, 정거장도 무시한 이 ‘급행 전철’은 다름아닌 레저문화 열차. 승객 모두가 여행객입니다.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는 신나는 라이브 공연이 펼쳐져 여행길 내내 노래와 연주로 흥을 불러일으킵니다.
철도청이 수도권 전철 개통 30주년을 맞아 전동차를 타고 떠나는 이색 여행, ‘레저문화열차’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 첫번째가 15일 기적을 높이 울린 ‘대부도 갯벌체험 열차’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오른 건 오전 10시. 예정보다 10여분 늦게 전동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열차는 이미 청량리역에서 태운 승객들로 절반넘게 차 있었다. 배정된 좌석에 앉으니 옆 칸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레저문화열차의 공연은 이미 진행형이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도~”
지하철 문화전도사인 ‘레일아트’ 박종호 대표가 통기타 하모니카 반주에맞춰 고래사냥을 시작하자 승객들은 너나 없이 손뼉치며 따라 부른다. 낯선 이들과의 동행길을 음악이 자연스럽게 묶어준다.
멜로디를 좇아 옆 칸에서 온 사람들은 빈 좌석이 없자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아이들은 신나 춤을 추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흥겨움에 어깨가 들썩인다. 편하게 자리를 펼친 한 가족은 아예 과자와 삶은 감자를 꺼내 나눠먹기 시작했고 캔맥주까지 땄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미 전동차 피크닉이 시작됐다.
팬플루트, 하모니카, 통기타와 피리의 3팀이 승객들과 하나돼 3곳의 객차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팀은 통기타와 피리. 전통피리로 ‘아리랑’ ‘렛잇비’ 등을 신나게 연주한 김태경씨에게는 아이들의 사인공세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칸 저칸 옮겨 다니며 흥겨운 가락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열차는 종착역안산의 신길온천역에 도착했다. 관광버스로 옮겨 타고 12.7km의 바닷길 시화방조제를 통해 대부도로 향했다.
버스에서 보이는 방조제 안팎의 오션뷰(Ocean View)는 키 낮은 승용차에서느낄 수 없는 장대함을 품는다.
최종 목적지인 대부도의 구봉도 바닷가, 종현마을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쏟아진 500여 승객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이제부터 자유시간. 차안에서 김밥등으로 속을 채운 이들은 곧장 갯벌로 뛰어들었고 나머지 관광객들은 점심을 때우러 주변 식당을 찾아든다.
버스 주차장에는 종현마을 부녀회에서 천막을 치고 장을 펼쳤다. 바지락칼국수 4,000원, 바지락파전 5,000원, 바지락탕 3,000원 등. 주변 식당보다싸면서도 맛이 뒤지지 않는다.
종현마을의 젊은 이장 최인모(35)씨는 “포도 농사와 갯벌만 캐던 주민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좌판을 열었다”며 “처음이라 익숙치 않지만 서울 손님들 맞는 정성 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랑이다.
바짓가랑이를 걷고 갯벌로 들어선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연신 바닥을 긁어낸다.
돌멩이를 들춰 조그만 공기구멍만 보이면 호미질이 빨라진다. 바지락과 동죽, 낙지에 자그마한 게 까지. 미끈미끈 뻘과 싸우며 거둔 전리품이 비닐봉투에 조금씩 늘어가는 맛에 얼굴과 몸뚱이 진흙 범벅이 되도 마냥 즐겁다.
한참 갯벌 사냥에 빠져있을 즈음, 어느덧 발목이 물에 찰랑인다. 물때가 시작됐다. 바닷물에 밀려나와 아쉽게도 갯벌체험을 접어야 한다. 이젠 아이들의 물놀이 세상이다. 뻘은 텀벙텀벙 해수욕장으로의 변신한다.
해변의 솔밭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작은 라이브 무대가 열렸다. 자연의 소리를 담은 안데스 음악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타고 해변 가득 번져간다.
에콰도르인들로 구성된 5인조 그룹 ‘시사이(SISAY)’가 잉카의 전통악기께나, 산뽀냐, 차랑고 등으로 풀어낸 감미로운 선율. 그 낯선 음악에 매혹된 관객들은 먼 바다를 응시하며 고된 일상의 짐들을 털어냈다.
/대부도(안산)=글ㆍ사진 이성원기자sungwon@hk.co.kr
■대부도 갯벌체험 어떻게 가나
환상선 눈꽃열차 등 관광열차는 있었지만 전철로 운영되는 관광전동차는 이번이 처음이다.
철도청이 운행하는 레저문화열차의 첫 시도가 대부도 갯벌 체험이다. 15일시작한 대부도 갯벌체험 레저문화열차는 이달에는 21(토), 29일(일) 운행하며 9월에는 5회, 10월부터 연말까지는 토ㆍ일요일 외에 평일에도 운영해월 10회씩 운영된다. 1회 10량에 500~540명을 태운다.
전동차는 오전 서울의 청량리역(지상)에서 출발해 영등포역(2층)에서 손님을 한번 더 태우고 안산의 신길온천역까지 직행한다. 여기까지 1시간20분안팎. 신길온천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가량 가면 대부도다.
예약은 코레일투어 (02-373-8881)에서 받는다. 요금은 어른 1만5,000원, 어린이 1만3,000원. 여행 당일 출발 30분전까지 해당 역 대합실에 모여 승차하면 된다.
열차내 공연은 ‘레일아트’ 팀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통기타, 전통 피리, 팬플루트, 색소폰 등 다양한 연주 팀이 매회 각기 다른 일정으로 공연을 펼친다. 현지 솔숲 해변콘서트는 ‘시사이’ ‘잉카 엠파이어’ ‘뉴깐치냔’ 등 3팀이 번갈아가며 안데스 음악을 연주한다.철도청은 인천, 의정부, 시흥시 등과 협의해 레저문화열차를 연말부터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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