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8년 8월20일 칠레 독립의 아버지 베르나르도 오이긴스가 칠리안에서 태어났다. 1842년 졸(卒).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는 스페인 식민지 관리로 뒷날 칠레 총독까지 지낸 암브로시오 오이긴스의 사생아였다. 권세 있는 아버지 덕분에 베르나르도는 어려서부터 호사스럽게 살았고, 16세 이후에는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영국에서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가 프란시스코 미란다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혁명가들과 어울리며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칠레의 독립을 꿈꾸게 되었다.암브로시오 오이긴스가 죽자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던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는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스페인 침공으로 남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본국의 통제가 약화한 틈을 타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1811년 칠레의 독립 의회와 정부가 산티아고에 구성됐지만, 이 첫번째 독립 시도는 페루 주둔 스페인군이 산티아고를 점령하면서 좌절됐다. 오이긴스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아르헨티나로 망명해 힘을 비축해야 했다. 오이긴스의 군대는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이 이끄는 아르헨티나군의 지원 아래 1817년 칠레를 공략해 마침내 스페인군을 물리쳤다. 오이긴스는 이듬해 2월1일 정식으로 독립한 칠레의 초대 최고집정관(대통령)이 되었다.
교회 권한의 축소, 장자 상속제 폐지, 미합중국과의 연대를 통한 남아메리카 독립 지원 등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던 오이긴스는 보수파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1823년 최고집정관 자리에서 물러났고, 만년을 망명지 페루에서 보내야 했다. 오이긴스는 "위대한 시인이 그렇듯, 위대한 장군도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위대한 장군으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군인으로서 위대했든 그렇지 않든, 칠레공화국은 그가 주도한 독립전쟁을 통해 태어났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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