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필버그 감독·톰 행크스 주연 '터미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스필버그 감독·톰 행크스 주연 '터미널'

입력
2004.08.19 00:00
0 0

미국인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공항 검색대를통과할 때부터 느껴지는 미국인 특유의 배타주의와 우월주의, 소수민족과제3세계에 대한 ‘위대한 미국’의 오만함을, 이렇게나 까발리고 쏘아댈 수 있다니.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기에 가능했다.‘터미널’(Terminal)은 철저히 의도적으로 만든 반(反) 미국적인 영화다. 크라코지아라는 동유럽의 한 국가에서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이방인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의 시선을 통해 미국적 가치를 뒤틀고 조롱하고깎아 내린다.

영어 못하는 게 나쁜 짓은 아닐 텐데, 영어 못하는 나보스키를 덜 떨어진죄인 취급하는 오만한 미국인 공항 직원들. ‘미국의 안보’ 운운하며 비(非) 미국인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이들의 거드름은 공항 내 스타벅스와나이키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살며시 가려져 있을 뿐이다.

영화는 미국의 축소판으로서 공항,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미국인들과 그들의 가치관을 계속 까발리기 위해 기발한 영화적 장치를 만들었다.

나보스키가 공항직원에 여권을 내미는 순간, 크라코지아가 쿠데타로 인해국가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 결국 나보스키는 9개월 동안 꼼짝달싹 못한채 터미널에서 살아가고, 영화는 ‘향수 나는 화장지를 쓰고 브로드웨이가늘 붐비는’ 이상향 미국의 소소하지만 추악한 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을 그만큼 벌게 된다.

그럼에도 스필버그 감독은 끝까지 미국적 가치를 저버리지는 못했다. 왜?나보스키가 9개월 동안이나 무전취식하면서까지 뉴욕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바로 재즈이기 때문이다.

나보스키의 아버지가 정말 받고 싶었던 위대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 베니 골슨의 사인을 위해 그렇게 모진 수모를 당하며 공항에서 버텼던 것. 어쩌면 실소가 나올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이 든 재즈 마니아의 순박한 바람일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렇게 가장 반미적인 영화 중심에, 가장 미국적인 재즈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치명적 한계다.

물론 이 같은 ‘미국 때리기냐 아니냐’의 관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필버그의 장점은 그만의 구수하고 재치 있는 이야기 솜씨에 있고, 영화는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계속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간다.

공항에서 일하는 비 미국인 점원들과 나보스키의 너무나 인간적인 유대(그들은 결국 나보스키를 그들만의 영웅으로 떠받든다), 스튜어디스 워렌(캐서린 제타 존스)과의 순수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가슴 아픈 로맨스….

또한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처럼 나보스키의 삶을 폐쇄회로를 통해엿보거나,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처럼 무인도(터미널)에서 혼자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는 영화적 재미도 있다.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톰 행크스’ 다운 작품이다.

/김관명기자kimkwmy@hk.co.kr

■'터미널'영화속 재즈 사진은

‘터미널’을 보다 생기는 궁금증 하나.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깡통에 꼭꼭 숨겨 소중히 간직한 그 사진은 도대체 뭣이며, 나보스키의 아버지가 그토록 사인을 받고 싶었던 베니 골슨이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진은 웬만한 재즈 팬이라면 한번쯤 본 ‘재즈의 초상(Jazz Portrait)’이라는 작품. 아트 케인이라는 작가가 1958년 뉴욕 할렘의 한 건물 야외계단에서 찍은 것인데, 20세기를 빛낸 유명 재즈 뮤지션이 많이 모여 있어 눈길을 끈다.

난해한 베이스 연주로 이름을 날린 찰스 밍거스, 일본 팬에 인기가 높은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양볼이 두툼해질 정도로 트럼펫을 세게 분 디지 길레스피 등 기라성 같은 뮤지션이 모두 57명이나 된다. ‘재즈의 초상’이라 이름 붙을 만한 사진인 셈.

베니 골슨(75) 역시 유명한 흑인 테너 색소폰 연주자.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국내에는 트롬본 연주자 커티스 풀러의 대중적 앨범 ‘작은 블루스(Blues-Ette)’의 멤버로 알려져 있다. 이 앨범의 대표곡 ‘Five Spot After Dark’는 베니 골슨이 작곡한 곡. 영화 ‘터미널’에서는 직접 카메오로 출연, 연주까지 했다.

그러면 ‘재즈의 초상’ 사진에서 베니 골슨은 어디에 있을까. 맨 위, 맨왼쪽 사람이 바로 베니 골슨. 옆은 아트 파머, 아트 블레이키로 이어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