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보험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보험 꺾기’가 은행 창구에서 공공연히 횡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금줄이 막힌 지방의 소호(SOHO) 사업자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이중으로 보험에 가입하기까지 하는 등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 제도가시행된 이후 상당수 은행들이 대부계 직원들에게 보험 유치 할당 목표를 부여하면서 보험 가입을 전제로 대출을 해주는 ‘보험 꺾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는 예ㆍ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꺾기가 보편적이었지만 방카슈랑스 시행으로 은행들이 수수료 사업에 주력하면서 보험이 새로운 담보물자리를 꿰찬 것이다.
집중 타깃은 모텔 여관 찜질방 목욕탕 등 대출 억제 대상이 되는 소호 사업자들이나 신용도가 낮은 개인들. 특히 경기 위축이 심한 지방에서 이 같은 은행들의 불법 꺾기 영업이 판을 치고 있다.
부산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최근 건물 증축을 위해 3억원을 대출 받으려고 평소 거래하던 A은행을 찾았다. 대출 기간에 맞춰 3년 짜리장기 화재보험에 가입해야만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게 대부계 직원의 설명이었다. 최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미 가입해 있던 1년 짜리 단기 보험을 해지하고 은행의 장기 보험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전주에서 건물 일부를 분양 받아 찜질방 영업을 하는 김모(51)씨는 은행측의 강요에 못 이겨 아예 이중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해야 했다. 화재보험의성격 상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이중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이후였다.
은행에서 보험 가입을 강요 받기는 개인 대출자도 마찬가지다. 한 보험설계사는 “신용도가 떨어져 대출을 받기 힘든 개인들은 창구에서 생명보험등에 가입한 뒤 대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내년 4월부터 자동차보험의 은행 판매가 허용되면 은행의 보험 강매는 극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객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보험설계사들의 타격도 만만치 않지만, 금융 당국은 아직 뒷짐만 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상반기에 방카슈랑스영업 행태에 대한 실태 조사를 했지만 별 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단속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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