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의혹을 받아오던 김승연 한화 회장이 8개월 만에 돌연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지난 5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 이후 귀국 시기를 저울질해오다 세인의 관심이 멀어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당사자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1심 재판이 끝난 점도 고려되었을 법하다. 아무튼 그는 주말을 이용해 조용히 귀국, 검찰 조사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사실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올 1월1일 김 회장의 갑작스런 도미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검찰은 뒤늦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기획 도피설까지 나돌았다. 출국 이유로 밝힌 미 스탠퍼드 대학 아태연구소 연수도 이뤄지지 않았다.
출국 후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김 회장은 미국에서 서 전 대표에게 10억원의 채권을 주었다는 자술서를 작성, 팩스로 보냈다. 이를 근거로 서 전 대표를 구속한 검찰은 김 전 회장을 대표적인 자수·자복 기업인으로 분류, 선처할 뜻을 비쳐왔다. 선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검찰이 사법처리 원칙을 밝히자 김 회장은 서운해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미국에 체류하면서 검찰과의 조율을 끊임없이 시도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구속은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귀국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16일 오후 대검 중수부에 자진 출두해 형식적인 조사만 받고 바로 귀가했다. 김 회장은 서 전 대표에게 돈을 준 사실은 인정했으나, 한나라당과 노무현 후보측에 건넨 40억원과 10억원은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김 회장이 서 전 대표에게 10억원을 건넨 시점이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한나라당의 특혜시비가 제기되었을 무렵이라는 점에서 대가성 의혹을 샀지만, 검찰은 "프라자 호텔 사장을 잘 알아서 후원한 것"이란 김 회장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줬다.
검찰은 김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법처리 문제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재소환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김 회장은 8개월 간의 해외체류로 여론의 빈축은 샀지만, 검찰 수사는 통과의례처럼 간단히 끝낸 셈이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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