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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와 역사가 만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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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와 역사가 만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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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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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을 청산하다 분단…이승만 독재를 청산하다 박정희 쿠데타…유신을청산하다 신군부 쿠데타…6월 항쟁을 해놓고도 3당 합당…”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봄 여권의 고위관계자가 한 회식 자리에서 이런 요지로 열변을 토했다. 우리 역사의 특징이 기회를 번번히 놓친 ‘미청산의 역사’라는 건 언제나 공감해온 터였다. 그래서 그의 ‘현대사 강의’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날의 자리가 인상에 남은 것은, 꼭 5년 전에 청와대의 한 수석으로부터같은 주제의 역사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선언을 접하면서도 “또!”라는 느낌과 함께 DJ가 ‘제2의 건국’을 선언했던 1998년 광복50주년 때 연설을 연상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간 뒤 취임한 정치인 대통령들은 어김없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숙명으로 여겼다. 결국은 같은 곳으로 생각이 귀결하는 듯한 모습이다.

과거의 청산으로 지역주의, 부패청산은 물론 언론개혁 문제까지 당면한 과제들을 한번에 풀겠다는 논리도 같다. 노 대통령은 “지금의 반목과 분열은 굴절된 역사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전임자는 “50년간 누적된 병폐가부정부패와 비효율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청산할 역사의 초점이 결국은 박정희 시대와 그 문화로 모아진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DJ의 경축사를 기초했던 학자는 당시 “제2의 건국은 DJ의 박전 대통령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담긴 도전장”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도 연설에서 “정략적 목적으로 지역을 갈랐다”며 71년 대선을 언급하는 등 주 타깃이 유신 체제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박정희 시대가 목표가 되는 것은 뒤따른 군사정권이 아류 성격인데다, 오늘날 국민정서에 신기루 같은 향수가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정희라는 인물과 통치기간은 친일과 군사독재라는 두 가지 청산대상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고리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역사 청산작업이 다시 시작된 것은 지금까지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음을 반증하는 일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벌들로부터 받은 비자금을 수사해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명쾌했지만, 이미 죽은 박 전 대통령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했다.

DJ는 화해부터 하고 손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TK지역을 직접 찾아 박정희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했다. 심지어 박정희 식 관민 의식개혁운동을 추진하고 새마을운동조직을 보듬었다. 한(恨)을 대승적으로 승화해극복하겠다는 사고방식도 있지만,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신바람을 불어넣는 일도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경쟁심리가 작용했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택한 반민특위의 부활 방식에는 복잡함이 없다. YS, DJ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내세우며 어려운 수사를 동원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을 한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의 시도 앞에는 실패한 전례와 다름없는 함정이 있다.제2의 건국 운동은 구 여권의 전국적 하부조직을 접수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그 결과 이 운동은 죽은 독재자의 미소를 부를 만한 처참한 말로를 걸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민 대통령의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 이후의 정권들은 아직껏 더 깨끗하고 도덕적인 집권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더 효율적으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우월을 보여주지 않는 한 과거에 대한청산은 그저 불쾌한 역사와의 만남일 뿐이다.

유승우 정치부 부장대우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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