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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유종호씨 첫 시집 '서산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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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유종호씨 첫 시집 '서산이…' 내

입력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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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유종호(69)씨가 시집을 냈다. “말에 대한 엄밀성은 언어동물인 인간이 가꾸어야 할 첫번째 기율(‘시란 무엇인가’ 민음사,95년)”이라던 그가 고희(古稀) 목전에 닿도록 묵히고 삭혀 하나 둘 걸러 낸 첫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민음사 발행)’다.시집에는 일상의 서정과 신산한 삶을 살아낸 지식인의 감상 등을 묶은 시41편이 묶였다. 표제작 ‘서산이…’는 딸의 산구완차 24시간 비행기를 갈아타가며 도착한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반딧불을 보고 쓴 시. “…/터벅터벅 육십 년/ 무슨 반딧불이 보자고/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 숨가빠온 것인가/…” (‘서산’이는 서산나귀의 별칭인데, 그는 시집의 발문 대신 주(註)를 달았다)

짧은 시 ‘둥글레차’에서는 “시월 내 삶의 툇마루에/ 비낀 햇살 여리고/ 큰 한잔 둥글레차/ 비우는 사이/ 이 가을이 다 가네/ 한 세상이 저무네‘라 해 그의 ‘나이’를 언뜻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고추잠자리’에서는 “쇠똥에 딩굴어도 이승이 좋아/…//死者를 다스리는 왕이기보다/…/째지게 없는 집 종살이를 하더라도//따위에서 땅 위에서 살고 싶노라/亡者 아킬레스는 말하던데/정말로 그러한가?” 반문한다. 산다고 그냥 다사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냉청한 성찰이고, 지엄한 훈도다. 시는 “고개 드매 문득/ 그제 같은 하늘에/ 어른 어른 몇 마린가 고추잠자리”로 끝맺고 있다. ‘시는 죽었다’는 시를 막 쓰고 함부로 책 내는 풍조를, 그의 표현을 빌자면 ‘가볍게 꼬집는’시다. “詩는 죽었다/ 神은 죽었다/ 함부로 허락되고 백죄/ 아무렇게나 시가 되나니//여치야/…/ 인마/이제 너흰 죽었다!/우린 죽었다!”

그는 10대때부터 시를 썼고, “시가 내 삶의 첫 정열”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집 머리말에 썼듯 “시를 몹시 좋아하나 쓸 생각은 통 하지 않는 이를 두고 그것만 가지고도 정녕 시를 아는 이”라는 시인 정지용의 말을 “그럴싸한 계고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자족의 계율을 파계’하며 그는“시인 소리 듣자는 게 아니라 시와 모국어를 향해 건네는 소소한 애정 헌사로 봐달라”고 했다.

시집과 함께 그는 1940~49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보낸 유소년기의 체험을 ‘비허구적 기억’을 토대로 쓴 책 ‘나의 해방전후’를 냈다. 책은엄정한 ‘사회사’로도, 노 평론가의 삶의 한 시기의 자전으로도 읽힌다.더러 그의 시들과 맥이 닿는 대목도 있어 함께 읽기 좋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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