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없는 순간까지는 멈추지 않겠습니다.”불혹을 훌쩍 넘긴 미국인 패트릭 해셋(46)씨는 하늘을 주름잡는 비행사다. 주야장천 날아다니는 게 일생의 업인 그가 발품 팔아 평생 하겠다는 일이 무엇일까? “5대양 6대주를 누볐다”는 그는 지금 아테네에 있다.
아테네에서 하는 일은 올림픽 자원봉사다. 한국 선수단 신박제 단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등 도우미 역할이다. 인터뷰할 짬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지만 웃음만은 잃지 않는다. 미국인에 대한 테러 위협 때문에 미 프로농구(NBA) 선수들마저 외면한 잔치가 꺼림칙하지 않았을까? “하늘은 크고 총알은 작다”는 답이 돌아온다. 굳이 뜻을 풀이하면 “가능성이 작은 일에매여 큰일을 그르칠 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하늘에선 30년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이지만 지상에선 20년 경력의 ‘베테랑 자봉’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이번 아테네 올림픽까지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올림픽 때만 되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자비 들여올림픽 개최지를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002)까지 더하면 올림픽 자원봉사만 올해로 7차례나 된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우연이고 반(半)강제였다. 공군에 복무하며 헬리콥터를몰았던 그는 로스앤젤레스 대회에 자원봉사로 차출(?)됐다. 그는 “폐막하는 순간까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즐거움이 4년 주기로 올림픽 때마다 그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88서울올림픽에선 영어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친절함에 매료됐고, 바르셀로나(92)에선 지중해 특유의 느긋함을 배웠다. 그는 “험악한 국제정치와 전쟁에서 벗어나 올림픽 무대에서 스포츠란 이름으로 인류가 조화를 이루고 하나되는 광경은 기적”이라고 했다.
“딱 1명만 파견한 나라도 있어요. 나라 이름도 처음 듣고 선수단 규모도작지만 그 선수 역시 올림픽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면 영예가 돌아갑니다.그것이 올림픽 정신이죠”라는 말도 덧붙였다.
7번이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올림픽 구경을 했으니 아테네 올림픽에 대한 느낌도 남다를 터. 그는 “하도 느릿느릿 돌아가서 안될 것 같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었지만 막상 개막하니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잖아요.이것이 그리스 방식이죠.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돼 대만족입니다.”
짧은 만남 뒤 그의 마지막 인사는 “씨 유 베이징!(베이징에서 만나요)”이었다. 베이징은 2008년 올림픽 개최지다.
아테네=글ㆍ사진 고찬유기자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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