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정작 남자보다 더 고통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간다. 태어나기(남아선호로 인한 낙태)도 힘들고, 병에 걸릴 확률(평균유병률 남성의 1.3배, 에이즈 감염확률은 무려 10배)도 훨씬 높다. 병을 앓고 난 후 후유증(예를 들면 뇌졸중)이나 약물 부작용(최근 문제가 된 PPA성분도 훨씬 치명적)도 여자에게 더 심하다.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여성 건강의 질을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일보는 2003년 5월13일부터 1년3개월 동안 연재해 온 ‘여자는 왜?’ 시리즈를 끝내며 전문가들과 여성건강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았다. 좌담회엔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산부인과 전문의), 이영해 한국에이즈예방협회 부회장(전 여자의사회 회장), 남정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여자가 오래 살기 때문에 여자가 훨씬 건강할 줄 알았는데, 시리즈를 연재하며, 많은 질병에서 여성이 훨씬 취약하다는 걸 깨닫게됐습니다.
남정자= 얼마나 오래 사느냐, 즉 평균 수명이 건강의 척도는 아닙니다. 요즘 ‘건강수명’을 말하는데, 여성이 오래 살지만, 건강하게 사는기간은 남성하고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질병을 앓고 사는 기간이 여성이 훨씬 더 길지요. 65세 이상 여성 노인 중 10명중 9명이 한가지 이상의만성질환을 갖고 있어요.
또 여성의 질병은 죽음으로 연결되는 치명적인 질환이기보다는 삶의 질을저하시키는 질환이 많습니다. 장애를 가지면서,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남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관절염 골다공증 요통 등이 특히 많더군요.
안명옥 = 고령화사회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여성 노인이 대단히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으로 올 것이기 때문에 ‘여자는 왜?’ 시리즈를 계기로 이에 대한 대책도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성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본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가족의부담이기 때문입니다.
이영해 = 여성 건강의 기반이 다져지는 시기는 10대부터입니다. 만성 습관성 질환의 발생은 병의 종류에 따라 시간 차가 있을 뿐, 대부분 청소년기를 얼마나 건강하게 보냈느냐에 달려있죠. 청소년기 특히 10대의 가장 큰 건강문제인 성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 여성 건강문제는 왜 이렇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을까요?
남= 최근 여성건강의 추이를 보니까, 그래도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남녀의 건강 격차는 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남아선호로 여아는 태어나기도 전에 임신중절로 종결되는 일이 허다했지요.때문에 여아 100명당 남아 106명이 자연 출생성비라면, 90년대 초 중반엔 남아가 113~115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들면서 성비불균형 폭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가족계획의 방법도 과거엔 여성의 난관수술이 압도적이었지만, 최근엔 남성의 콘돔 사용률도 상당히 늘고 있어요. 패치에서 링까지 여성피임법도 다양해지고 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피임실천을 여자의 책임으로만 더 이상 돌리지 않게 된 것이죠.
▲ 사회 =만성병 유병률은 어떤지요?
남 = 질병으로 인해 입원하거나 결근하기 때문에 겪는 활동제한유병률도 여성이 높지요. 20세 이상 성인의 연간 만성질환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남자는 50.5%인 반면, 여자는 57.9%나 됐어요. 급성질환 유병률도여자가 높았어요. 급성질환으로 2주간 활동제한을 받았던 유병률을 조사하니, 남자는 12.7%, 여자는 16%였습니다. 스스로 건강하다는 인식도 여성은남성에 비해 부족하지요.
▲ 사회 =왜 이렇게 여자는 남자보다 허약할까요.
안 = 단순한 신체적 차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경제적인 다양한 이유가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지요. 세계보건기구는 남자와 여자의 건강차이는 남녀의 역할과 책임, 사회에서의 위치 차이, 의료 이용과 접근에 대한 차이,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적 코드가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요. 분만, 육아는 삶의 즐거운 과정이지요. 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일 경우 신체적 손상이나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따라서 가임기 여성 건강 문제는 사회나 국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 = 맞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돼서 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여성의 건강은 사회적 지지를 받아야 해요. 차병원에서 ‘소녀들의 산부인과’를 개설했었는데, 아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미혼모, 지나친 다이어트 때문에 빈혈로 고생하는 소녀들을 진료하며, 청소년기야말로 ‘몸에 대한 존중’을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남 = 네, 학계에서는 과거 여성건강의 초점을 가임기(19~44세)에만 맞추었지만 최근 추세는 생식건강(Reproductive Health)이라고 해서, 여성건강의 범위를 태아기까지 확대하는 경향이지요.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통합해 여성건강이라는 학문을 별도로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 진료하다 보면 연령별로 여성이 겪는 만성병의 종류는 확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현재상황을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대비해 청소년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지요.
안 = 외국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여성건강이 사회의 이슈가 돼왔는데, 우리나라에선 ‘제왕절개술’ 같은 소극적이고 지엽적인 것에만매달려 여성문제는 이슈가 됐어도, 여성건강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왜?’ 시리즈를 계기로 여성건강은 사회적 문제이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중심언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주었으면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여성건강’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요. 여자가 결정을 내려야 저출산도 해결될 문제이고, 고령화도실은 여자의 문제입니다.
▲ 사회 =여성건강 증진을 위해 여성 스스로, 또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안 =청소년기의 성교육을 더욱 강화했으면 합니다. 에이즈 감염률이 요즘 너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10대 미혼모의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또 건강에 대한 상식들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다이어트를 하면 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이런걸 너무 몰라요. 학교보건 교육은 예방에서 처치까지 포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 학교보건교육도 좀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아무리 늦었다 해도 해결책은 역시 교육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제도에 얽매여 있어요. 학교건강 교육을 누가 시킬거냐, 양호교사냐, 생물교사냐, 아니면 보건교사가할거냐 이런 문제에 얽매여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요.
남 =보건과목이 단독 교과목으로 채택돼야 하는데, 우리 실정에선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지요. 미국에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건강 커리큘럼에 보건과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이상하게 성지식에 무식하고 무지한 데 대해선 부끄러워하지않는 것 같아요. 이상한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통해 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실정이니, 말이 안됩니다. 올바른 성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약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여성들은 나쁜 생활습관 고치기는 싫어하고, 모든 걸 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의사도 어쩌다 약만주는 역할만 하게 됐는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안 =청소년기부터 여성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 여성의 갱년기가 그믐달이 아닌, 보름달처럼 밝고 풍성했으면 합니다.
사회ㆍ정리= 송영주 의학대기자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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