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16일 오전 11시58분부터 26분간 미군 B-29 폭격기 101대가 경북 왜관 서북방 북한군 진지 지역(가로 3.3마일, 세로 7.5마일)에 1,000t의 폭탄을 떨어뜨려 이 일대를 초토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처음 시도된 융단폭격이었다. 폭격의 규모와 집중성에 견주어 북한군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융단폭격(carpet bombing)은 대편대(大編隊)의 폭격기들이 특정지역에 융단을 깔아가듯 집중적이고 연속적으로 폭탄을 투하하는 대규모 폭격을 가리킨다. 거의 빈틈없이 폭탄이 떨어지므로, 융단폭격의 대상이 된 지역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고 만다. 융단폭격의 효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5월30일 영국 공군이 독일 쾰른시에 감행한 폭격이다. 90분 동안 2,000t의 폭탄이 비오듯 쏟아졌는데, 이 폭격으로 사상자 5,500명, 이재민 4만5,000명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쾰른시 일부가 완전한 폐허로 변했다. 두 해 뒤인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도 미군과 영국군의 폭격기 1만2,500대가 해안 인근에 융단폭격을 가해 연합군 상륙의 발판을 만든 바 있다.
융단폭격은 현대전이 드러내는 잔혹함의 한 측면이다. 이 융단폭격이 무차별폭격과 결합할 때 그 잔혹성은 끝간데로 치닫는다. 무차별폭격은 민간인들을 포함한 비군사적 목표를 군사목표와 구별하지 않고 가하는 폭격이다. 전시에 군사목표와 비군사물을 구별해 군사목표에 대한 포폭격(砲爆擊)만을 허용한다는 군사목표주의는 20세기 초 이래 확립된 국제법상의 원칙이지만, 이 원칙은 자주 무시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상당지역을 '석기시대'로 되돌린 것은 이런 무차별폭격의 결과였다. 이라크에서도 보듯, 전쟁의 마수는 점점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을 더 겨누고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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