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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한·중·일 다시 보기

입력
2004.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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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관계가 시끄럽다. 말썽의 진원지는 중국이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다가 한국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고, 축구 팬들의 반일 난동으로 일본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세계가 중국의 경제발전을 주목하는 가운데 일어난 이런 사태들은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새삼 깨우쳐 준다. 가격과 품질을 비교하며 중국 상품을 선택하던 사람들은 중국 제품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고구려사 왜곡은 발상도 놀랍지만, 우리 정부의 항의에 대응하는 방법은 요즘 말로 '엽기적'이다. 지난 4월 중국 외교부 홈 페이지는 한반도 구성 정권에서 고구려를 삭제했는데, 7월 초 이를 발견한 우리 외교부가 복원을 요구하자 한국 고대사를 통째로 빼버렸다. 한국사는 1945년 이후만 남게 됐다.

온 세계가 웃을 수밖에 없는 코미디 같은 대응이다. 중국 정부는 남들이 웃든 말든 이런 식으로 외교적 갈등을 봉합한 후 '학술 연구'는 계속하겠다는 속셈인 모양이다. 정상적인 대화가 힘든 상대다.

고구려사 왜곡은 중국의 사회과학원이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중국 동북 지방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이 대규모 사업은 한반도 러시아 몽골 등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고, 중국 정부의 의도가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 관심을 모아 왔다.

고구려사 왜곡이 '의도적인' 프로젝트의 일부라는 것은 해결이 어렵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예상케 한다. 흥분하지 말고 상대를 잘 파악하면서 중국과의 분쟁에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한·중 수교 12년 동안 젖어 있던 핑크 무드에서 깨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일 밤 베이징에서 일어난 축구 팬들의 난동은 이 나라가 2008년 올림픽을 어떻게 치를지 걱정하게 한다. 일본과의 축구 경기에서 중국이 1 대 3으로 지자 관중들은 일본 선수들을 위협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다. 국영 CCTV는 "심판의 오심이 일본의 승리를 도왔다"고 되풀이 보도했고, 반일 구호가 베이징에 흘러 넘쳤다.

일본은 분개했다.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으로 자주 물의를 빚어 온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중국은 민도가 낮아서 어쩔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개탄이 끝나기도 전에 고이즈미 총리는 "내년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 중국의 반일 감정과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연관짓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남의 나라 민도를 개탄하는 일본의 수준도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된다.

한국의 수준은 나은 편인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우리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자극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한중 국교가 열리자 중국으로 몰려 가기 시작한 관광객들 중에는 고구려 유적을 돌아보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는가 하면 '실지(失地) 수복' 등의 현수막을 내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56개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이민족 간의 결속과 국가 통합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 관광객들의 행태가 어떻게 비쳤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행태는 고구려사 왜곡이나 일본에서 흘러나오는 망언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아직 갈 길이 먼 나라들이다.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위치에 걸맞은 국제 규격의 양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세 나라 사이에는 물론 큰 차이가 있지만, '나는 다르다'라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바로 그 점이 아시아의 한계이고, 어느 수준 이상의 경제발전을 막는 걸림돌이다. 그 한계를 깨고 진정으로 세계화하는 나라가 먼저 앞서 갈 것이다. 온 세계가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접하고 참여하는 시대에 무슨 역사왜곡이며 신사참배인가.

반미친중을 외치더니 꼴 좋게 됐다고 진보파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은데 그렇게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반미든 친중이든 막연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알면서 해야 한다. 일당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국이 갖고 있는 특성과 한계를 잊은 채 친중을 외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고구려사 왜곡에 강력하게 다각도로 대응하면서 한중일을 다시 연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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