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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초콜릿전쟁/로버트 코마이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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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초콜릿전쟁/로버트 코마이아 지음

입력
2004.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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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전쟁로버트 코마이아 지음/안인희 옮김

비룡소 발행/9,000원

청소년 문학의 걸작이다. 아니다. 학교 도서관에 들여놔선 안 될 책이다.

미국 작가 로버트 코마이어의 소설 ‘초콜릿전쟁’은 1974년 출간 당시 이처럼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금서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의 요지는이 작품이 그려 낸 학교 현실이 너무 비관적이고 폭력적이다,

결말이 너무 암담하고 비참하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일곱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한 끝에 책을 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옹호하는 교사와 사서들은 그런 적대적인 압력에 맞서 싸워야 했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의 한 가톨릭계 남자 고등학교. 학생을 경멸하며 정신적 폭력을 일삼는 선생, 그런 선생을 ‘개새끼’라고 욕하면서도 감히 드러내놓고 저항하지 못하는 학생들, 그리고 학교의 묵인 아래 전통과 질서를 지킨다며 아이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의 비밀 서클 ‘야경대’가 있다.

‘초콜릿전쟁’은 그들 간에 벌이는 야비하고 잔인한 신경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학교라는 공간의 억압과 폭력을 거북할 만큼 적나라하게 정면으로 고발하는 문제작이다.

속으로 ‘빌어먹을’ 이라는 소리를 연발하면서도 적당히 억압적인 질서와타협 하기. 그게 대부분 학생들이 견디는 방식이다. 싸워서 깨뜨리기엔 역부족이니까. 신입생 제리도 그랬다.

그런 제리가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은 학교 후원금 마련을 위해 초콜릿을 팔라는 지시를 거부하면서부터. 야경대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 하지만제리는 야경대가 정해놓은 기간 이후에도 판매를 거부한다.

용감해서가 아니다.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하려는 원칙을 지키려는 것 뿐이다. 다들 강제로 할당받은 초콜릿을 파는 동안 제리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고집스레 버틴다.

결말은 비참하다. 잠시 영웅시되었던 제리가 왕따로 전락한 것이다. ‘너만 잘 났냐’는 다른 학생들의 빈정거림, 야경대의 협박과 회유, 위압적인교감 선생의 비열한 조롱이 쏟아진다.

제리는 야경대 리더 아치의 계략에 빠져 교내 불량배와 권투 경기를 벌이다 크게 다쳐 만신창이가 된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제리는 자신의 사물함에 붙여놓은 포스터의 문구, ‘내 감히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랴’를 떠올린다. ‘그래,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함께.

우울한 결론이다. 제리를 무너뜨린 패배감과 허무감은 그대로 독자를 엄습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거나 ‘용기를 가져라’ 따위 일말의 위안 같은 메시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암울하고 끔찍할 뿐이다. 지옥 같은 학교에서 정신적 상흔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시들어가는 제리의 비극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겨 봐도 그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은 “대한민국 학교, Ⅹ까라고 해”라고 절규한다. 하지만 제리의 영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간다.

그 과정을 분노의 눈길로 지켜보는 독자라면 다음과 같은 시구에 마음이 끌릴지도 모른다. “더 이상 웃지 않는 두 눈을 가진 당신/공포와 고통의얼굴을 한 나의 형제인 당신/일어나서 외쳐라.‘아니다!’ 라고”(아프리카 시인 다비드 디옵의 ‘도전’에서).

이 소설이 한때 금서가 된 까닭은 그렇게 ‘아니다!’ 라고 외치며 일어서는 반란을 부추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바로 이 소설의 힘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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