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정체성 논란이 경제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12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중앙대 안국신 교수가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이정우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의 면전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은 좌파 정책"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위원장은 "너무나 사실과 동떨어져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으나, 같은 장소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마저 "이념편향을 버리고 시장원리를 수용하라"고 밝혀 이 위원장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좌파실험 반성문 써라"/ 안국신 중앙대 교수
안국신 교수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1970년대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시절 민주화 세력이 가졌던 이념 틀로 현실을 재단하고 있다는 것이 이른바 '가진 자들'에게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성장 제일주의에 매몰됐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분배와 형평을 내세우는 것이 앞선 시대정신이었지만 잠재성장률이 5%대로 낮아지고 국경없는 전방위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화 시대에는 효율을 앞세우는 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예로 들며 "좌파정권에서는 여론몰이와 대중 영합적 정책이 출몰하고 경제는 뒷전인 채 '정치 제일주의'가 횡행하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600년의 브랜드를 갖는 수도를 이전하는 국가대사를 국민투표도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독재정권도 엄두를 못낼 일"이라며 비난했다.
안 교수는 재벌정책에 대해서도 "모든 기업에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기보다는 각 기업이 스스로 최선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투명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참여정부가 무기력증에 빠진 우리 경제사회를 일신시키려면 집권세력은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좌파적 실험을 거두는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막연한 불안 선동말라"/ 이정우 靑 정책기획위원장
이정우 위원장은 "참여정부 정책을 분배주의,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데 무엇이 분배주의고 평등주의냐"고 반박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사회주의적 정책인지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이런 행태를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사회에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조차 제대로 돼 있지를 못해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며 "그 사람들에게 최후의 구원의 손길조차 내밀기에 인색한 것이 우리 복지정책의 현주소인데, 더 이상의 복지정책과 재분배정책을 쓰면 큰 일이 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정함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면 서울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불안이 있지만, 서울 부동산의 가격 폭락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설혹 서울 집값이 떨어져도 서울 주민 중 집 없는 절반과 집이 한 채 밖에 없는 다수 가구는 집을 처음으로 사거나 큰 평수로 늘려 갈 수 있으므로 오히려 유리하다"며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념 벗고 시장원리 수용해야"/ 이헌재 경제부총리
이헌재 부총리는 "우리 경제·사회는 다양한 이념적 스팩트럼이 수용되지 못하면서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 친시장과 반시장, 좌냐 우냐하는 이념적 혼란을 겪고 있다"며 "경제개혁의 노력도 좌냐 우냐 하는 이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시장경제 확립과 경제선진화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기회의 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지 만인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이 노동당의 좌파 논리를 버리고 대처리즘의 시장주의 원리를 받아들여 장기집권하고 있는 것은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 사회의 목표는 빈부격차의 해소가 아닌 빈곤타파가 돼야 하고 부유층에 대한 맹목적 반감도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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