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지출확대 방침에 이어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함에 따라 거시정책기조는 사실상 '부양'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현재의 불황구조가 워낙 복합적이어서 재정·금리정책을 통한 진작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가능한 수단은 총동원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다.
금리 왜 낮췄나
박 승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인하의 결정적 배경으로 '고유가'를 꼽았다. 당초 배럴당 26달러(브렌트유 기준)를 전제로 경제전망과 운용계획을 짰지만, 이미 40달러를 넘어섰고 더구나 고유가의 장기고착화 국면으로 치달음에 따라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고유가로 인한 국내 총생산(GDP) 성장손실은 1%포인트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고유가와 금리정책의 관계는 매우 복합적이다.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압력은 금리인상 요인이 되지만, 구매력 악화로 인한 내수침체의 가속화는 금리인하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은은 여기서 고유가의 내수악화요인을 선택함으로써, 금리인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은 당국자는 "고유가로 물가불안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비용요인이기 때문에 당초 설정한 연간 물가목표는 달성이 가능하다"며 "대신 하반기엔 수출과 건설부문 둔화가 불가피해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내수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낮추게 됐다"고 말했다.
전망과 효과는
한은은 콜금리인하로 기업 및 개인의 금융비용이 줄어들어 소비·투자심리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대출금리가 같은 폭으로 떨어진다는 전제하에 연간 기업은 1조2,000억원, 개인은 1조3,000조원의 금융비용 절감이 발생할 것이란 계산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금리의 경기파급 효과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투자부진이 금융비용 때문이 아닌 만큼 금리인하가 투자촉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실질금리 마이너스폭은 더욱 확대돼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도 커질 전망이다.
비록 수요아닌 비용 요인에서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물가상승국면에서 금리를 낮춤에 따라 인플레 압력고조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제한적 부양효과와 물가불안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추가악화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중앙은행이 물가상승국면에 금리를 낮춘 것은 인플레 방어란 기본책무를 포기한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어차피 경기와 물가 중 하나는 선택해야 했다는 시각도 많다.
동부증권 신동준 연구원은 "추가적 금리인하 가능성도 열어놓아야 할 것 같다. 부양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일본식 저금리정책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동결" 외치더니… 韓銀 깜짝쇼
'한국은행이 깜짝쇼를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은 금리정책이다'
12일 전격적 콜금리 인하결정을 놓고 시장에선 한은의 금리결정 스타일에 대해 실망과 비판이 쏟아졌다.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신뢰는 정책의 예측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비상시국도 아닌 상황에서 아무런 시그널 없이 깜짝쇼를 하듯 금리인하를 단행함으로써 한은 스스로 시장의 믿음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다.
당초 시장은 콜금리 동결을 확신했다. 최근 연합인포맥스와 이데일리가 각각 실시한 콜금리 전망조사에서 BOK워처(한은 금리정책 전문 애널리스트)들은 '100% 동결'이라고 답했다.
시장의 금리예측에 가장 중요한 잣대는 경기지표와 한은 총재 발언이다. 그러나 박 승 총재의 최근 언급에선 어떤 금리인하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다. 박 총재는 지난 6월 금리인하설에 대해 '황당하다' '금리를 내려 경기가 살아난다면 1%포인트라도 내리겠다'고까지 얘기했고, 금리인하에 대한 부정적 발언은 지난달에도 변화가 없었다. 금통위 발표문에서도 금리인하 시사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금리정책결정을 앞두고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은유적 어법을 통해 금리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장은 이 메시지를 근거로 금리방향을 예측하며, 실제 FRB의 금리결정은 이 같은 시장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FRB의 신뢰는 이런 '시장과 대화'를 통한 정책의 예측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은은 시장과 담을 쌓은 채 금리인하를 결정했다. 박 총재는 시장에 너무 많은 시그널을 주는 것도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이런 박 총재의 태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금통위를 통해 금리정책의 예측성과 신뢰성은 상실됐다.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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