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가 모르는 일본말로 비밀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중에 여러 번 듣다보니 ‘오까네’ 뭐 이런 말이 나오면 돈때문에 걱정하시는구나, 하는 걸 알았다.그리고 어른이 되어 아내와 나도 아이가 모를 말로 ‘오늘 그랜드마더 프레젠트 때문에 디파트먼트 스토어에 갔는데…’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지 않으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우리 말을 가만히 듣고있다가 우리보다 먼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선물 얘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부부는 다시 그 시절처럼 말을 조심해서 쓰고 있다. 키운 지 10년 되는 강아지 때문이다. ‘깜비’라는 자기 이름 외에도 ‘맘마’ ‘먹이’ ‘치즈’ ‘아이스크림’ ‘목욕’ ‘미용’과 같은 말을 귀신처럼 알아들어 “여보, 깜비 목욕 좀 시켜요.” 하면 침대 밑에 들어가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걔, 치즈 좀 줘요.” 했는데도 미처 주지 않으면빨리 내놓으라고 옷자락을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치즈’는‘후추’가 되고, ‘목욕’은 ‘숙제’가 되었다. “여보, 쟤 숙제 좀 해줘요.” 그래야 침대 밑으로 숨지 않는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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