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직원들은 최근 외교부 신청사 1층 로비에 난데없이 등장한 외교사료 전시물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조미(朝美) 우호통상조약문' 이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사진', '휴전협정서' 등 전에 없던 외교사료 10여점이 1m높이의 좌대에 올려져 한쪽 벽면 아래를 차지하더니 아예 상설전시물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전시"라는 투덜거림 속에 "뒷 벽의 그림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수근거림도 나온다.사연인즉 이렇다. 외교부가 2002년12월 신청사로 이전할 때부터 건물 1층 벽면에 대형 '말(馬) 그림(사진)'이 걸려있었다. 가로 10m, 세로 2m 남짓의 대형 화폭에는 대지를 박차고 치솟거나 질주하는 말 20마리가 들어있다. '도약'이라는 제목처럼 웅비하는 기상을 표현하는 듯하다. 지난해까지도 직원들은 출근길에 그림을 보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외교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 탈없던 그림에 직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입방아에도 오른 것은 올해 들어서 부터. 간부직원의 대통령 폄하 발언 파문으로 윤영관 전 장관이 옷을 벗은 데 이어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외교부가 개청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시기와 맞물려있다.
"터가 세서 그렇다(신청사는 조선시대 감찰기관인 사헌부 터)" "집들이 고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뒷말과 함께 "그림이 요사스럽기 때문이다"는 해석이 등장한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말들이 무언가에 놀라 천방지축으로 미쳐 날뛰는 것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직원전용 인터넷 토론방은 "분위기가 별로인 그림을 떼내고 독도사진이나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표현한 지도를 걸자"는 등의 글로 시끄러워졌고 급기야 이 이야기는 반기문 장관 귀에까지 들어갔다. 반 장관은 최근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교체방안을 강구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관의 지시를 받은 총무과는 청사관리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와 협의에 나섰다. 그러나 돌아온 회신은 '교체가 어렵다'는 부정적 답변. 당초 1억원 가량으로 화가와 구매계약할 때 전시기간을 명시했는데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사료 전시는 그래서 난감해진 외교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이다. 그림 앞에 이색 전시물을 설치해 그림으로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켜 보자는 계산된 조치인 셈이다. 외교부의 '다목적 전시물'이 얼마나 외교부 액운을 얼마나 막아줄지 두고볼 일이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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