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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호모 스포르티부스'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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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호모 스포르티부스'의 초상

입력
200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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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오누이 신(神) 페보스(아폴로)와 아테나를 마스코트로 삼은 제28회 올림픽이 내일 아테네에서 막을 올린다. 사도 바울로의 편지 두통 덕분에 신약성서에까지 이름을 올린 테살로니카에서 그리스 팀과 오늘새벽 첫 경기를 치른 한국 축구 팀에게는 올림픽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근대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열리기는 1896년 그 첫 대회가 거기서 치러진 이래 두 번째다. 그리스 정부와 아테네시는 근대올림픽 한 세기를 맞은 지난1996년의 제26회 대회를 유치하려 애썼으나, 1백주년이라는 상징성을 탐낸미국의 힘에 밀렸다. 그 해 대회는 애틀랜타에서 열렸다.

민간 기업들이 앞 다투어 손을 적신 탓에 ‘스폰서 올림픽’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던 애틀랜타 대회는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며 올림픽 상업주의가 흐드러지게 꽃피는 계기가 되었다. 실상 애틀랜타 대회 이전부터, 올림픽은 이미 하나의 경제 현상이었다. 그것을 경제 현상으로 만든 결정적 힘은 매스미디어다. 올림픽이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고 거기 광고가 줄줄이 따라붙으며, 아마추어리즘이 설 자리는 점점 비좁아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경기 방영권과 엠블렘ㆍ로고 사용권 따위를 독차지하며 거대 기업이 되었고, 올림픽산업은 식품ㆍ의류ㆍ레저ㆍ건설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비즈니스가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 스포츠용품 브랜드 ‘르까프’는 근대올림픽의 창건자 쿠베르탱이 만들었다는 라틴어 구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의 머리글자들에다 프랑스어 남성정관사를 얹은 것이다. 아직 아마추어리즘의 허울을 남겨놓고있는 올림픽이 이 정도니 프로스포츠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난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그 자신이 하나의 대기업이다.

스포츠는 경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현상이기도 하다. 아테네 올림픽 공식 웹사이트는 오누이 마스코트 페보스와 아테나가 참여ㆍ우애ㆍ평등 같은 올림픽의 가치들을 상징한다고 적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흔히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의 온상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도 주최국의 공격적 민족주의가 날것으로 발산되는 것을 목격했다. 제 나라 선수들의 목에 메달을 걸기위해 미친 듯 쏟아 붓는 돈(‘포상금’이라는 반아마추어적 관행까지 포함해)은 스포츠민족주의의 한 바로미터다. 애국주의와 비즈니스는 스포츠를주례로 행복하게 결혼한다.

애국주의와 비즈니스의 주례라는 말에서 스포츠말고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전쟁이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르고 있는 전쟁놀음이 바로 애국주의와 비즈니스의 전형적인 주례다. 아닌게아니라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경기들은 하나의 전쟁이다.

올림픽에 ‘출전(出戰)’하는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태극전사(太極戰士)’로 불린다. 게다가 올림픽은, 그 산파 쿠베르탱이 세련된 인종주의자였듯, 아직도 부유한 계급과 부유한 나라들의 행사다. 최고의 수영선수가되는 데는 신체 조건 못지않게 경제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이 종목에 왜 그렇게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춰 낸 책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필리프 시모노는 현대의 인간을 호모 스포르티부스, 곧 스포츠 인간으로 규정한 바 있다. 호모 스포르티부스는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인간이다. 능률성과 생산성이라는 기술주의적 준거틀로 수렴되는 진보관은 현대의 스포츠와 시장지상주의 경제가 공유하고 있는 태도다.

제28회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아테네로 간 우리 선수들에게,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대표해 그 곳에 간 선수들 모두에게, 이 인류의 큰 잔치가 피말리는 전쟁이 아니라 신명 나는 놀이가 됐으면 좋겠다. 보름 넘게 텔레비전을 통해 이 잔치를 지켜볼 구경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 현실성 있는 희망은 아니지만.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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