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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논총 대신 회고록 낸 조동일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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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논총 대신 회고록 낸 조동일 서울대 교수

입력
200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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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절(直切)의 필치는 그의 엄정한 삶의 반영이다. 학문과 제자를 대하는 자세이기도 했다. 한국 국문학계의 큰 어른, 서울대 조동일(65) 교수가 36년 반에 걸친 교수생활을 회고하고, 제자 75명의 글을 보탠 ‘학문에 바친 나날 되돌아보며’(지식산업사 발행)를 엮어냈다.책에 얽힌 일화 하나. 5년 전 회갑 때도 그는 제자들이 논문을 헌정하는 ‘기념논총’이라는 것을 마다했다. 대신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 문학’ 등 3권의 저서로 잔치를 대신했다. 제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결벽성이다. 이번에도 그의 ‘정년기념 논총’은 없다. 대신 계명대, 영남대, 정신문화연구원, 서울대를 거쳐 온 지성편력을 정리하고 거기서 인연 맺은 제자들의 기억에 기대 사제동행의 일화들을 함께 묶었다.

제자들에게 그는 ‘괴물’로 기억되고 있다. 수업에 1분이라도 늦으면 강의실 입장이 거부됐고, 과제 제출이 늦으면 아예 성적이 나오지 않아 낙제를 면할 수 없게 하던 깐깐함. 계명대 제자였던 김교봉 (계명문화대)교수의 글 한 대목. “강의 종료 종소리와 함께 글씨를 쓰던 분필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장면이 거듭 연출되었다.” 그는 “5시가 마감인데 1초라도 넘겨 연구실 문 밑으로 넣으면 어김없이 그 보고서는 다음 주 수업시간에 되돌려졌다”고 했다. 강의나 논문심사 때 논박을 넘어 면박을 당하기는 예사였다고 한다.

이 같은 제자들의 회고담에 대해 조 교수는 책의 ‘마치는 말’에서 “교수노릇 잘못해서 용서를 구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고 적었다. ‘몇 마디변명을 보태자면’이라고 운을 뗀 뒤, 그는 “숨가쁘게 달려 온 걸음을 멈추고 앞뒤를 돌아보니 중년 이후까지 가장 많이 시달린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 질정(叱正)의 강단생활 도정에 구전, 고전, 근세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인문학 논문 200여 편과 50여 권의 책을 썼다.삼국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한국문학을 통사로 정리한 ‘한국문학통사’(전6권)는 철학과 역사학도에게도 필독서로 읽힌다.

하지만 ‘천성’은 바뀌는 법이 없나 보다. 딴은 그의 ‘반성’은 제자들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이지, 학문에 대한 그의 엄정한 자세에 대한 반성일리 없다. 그가 불특정 다수의 제자들에게 글을 청하며 쓴 ‘알림 글’의 한 대목. “나를 지칭할 때는 ‘선생님’이라고 한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서술, 찬사는 피한다…”

그에게는 직접 지도해 배출한 석ㆍ박사가 50여명, 간접 지도한 이들까지 치면 100명에 이르지만 책에는 75명의 제자가 참여했다. 3월 말로 정한 마감시한을 맞추지 못한 제자들이 뒤늦게 글을 들고 출판사에 달려왔지만, 조 교수가 일언지하 거절했다는 후문. 그는 머리말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회고하는 글을 쓴 제자는 모두 75인이다. 공자의 제자보다 셋이 많다.”

그는 11일 책에 글을 쓴 75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룡산에서 1박2일 자축연을 연다고 한다. 대학 2년 선배로, 그의 책을 30년 가까이 도맡아 출판하며 친구처럼 교유해 온 지식산업사 김경희(67)씨까지 따돌리고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다. 이 달 말 서울대를 정년퇴임하는 그는, 첫 직장인 대구 계명대에서 석좌교수를 맡아 향후 5년 10학기 동안 ‘세계화 지방화 시대의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할 예정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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