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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中·日 '축구전쟁'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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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中·日 '축구전쟁'을 보며

입력
200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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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베이징에서 중국과 일본이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전을 치렀다.그런데 베이징의 분위기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노골적으로 반일감정을 표출하였고, 일본 정부는 충돌을 우려하여 국민들에게 응원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였다.작년 중국 남부의 한 도시에서 발생한 일본인들의 기생 파티와 셴카쿠열도(댜오위타이)를 둘러싼 영토분쟁 등으로 악화되고 있는 중일관계가 그대로축구장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긴장된 분위기에서 치른 결승전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일본이 넣은 골 중 한 골이 일본 선수의 손을 맞고 들어간 것이어서 중국인들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결국 경기가 끝난 후 주최국인 중국은 은메달 수여를 거부하는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흥분한 중국 관중들은 일본 선수단이 탄 차와 일본 공사가 탄 일본대사관 승용차를 공격하여 외교적 마찰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베이징 공안국이 일본대사관에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양국의 손상된 감정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민감정의 충돌은 우리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중국의 일부 아나운서, 언론, 그리고 축구팬들이 한국팀의 선전을 자극적인 용어로 폄훼하여 우리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팀이 8강에 오르기까지 중국 축구팬은 항상 우리의 상대팀을 응원하였다. 일부 교민들은 우리가 8강에서 떨어진 것은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할 정도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일차적으로는 중국팬들의 과잉반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스포츠가 정치와 분리된 것이 아니며 동북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스포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이 이렇게 계속 상승작용을 한다면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민족주의는 동아시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통치이데올로기이자저항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추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시아의 평화적 공존을 위협하고 있다.

첫째, 대외팽창적 성격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일본 총리가 신사 참배를 지속하고 일본이 군사대국화되는 것, 한국내 일각에서 만주 영유권 주장이 제기되는 것 등등이 모두 정도의 차이는있지만 그 예가 될 수 있다.

둘째, 민족주의 공격적 표출 대상이 침략적 서방세력에서 주변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대중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민족주의가 점차 통제하기 어렵게 돼 가고 있다. 심지어 권위주의적 통치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정부가 대중의 민족주의적 요구 표출로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양상은 아시아에서도 민족주의가 잘 조절되지 않을 경우 일부에서제안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치ㆍ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지역 통합을 저해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위험성을 가진 이데올로기로 인식되고 있는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는 상당히 오랫동안 약한 자의 정당한 주장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조절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적대적, 혹은 팽창적 민족주의의 강화는 다른 어디보다도 한반도에 가장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민족의 이익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되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연결시키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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