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습지가 있었다.' 물과 땅이 만나 천지만물을 잉태하는 곳. 육상과 수상 생태계의 전이지대로 먹이와 산소가 풍부한 습지는 수조류 어패류 양서류 파충류 등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흔히 '생물 종 다양성의 보고'로 불린다.
그러나 원시의 녹색자연이라고 해서 꼭 멀고 외진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닐 터. 서울 안에도 서울시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습지가 7곳이나 되고, 그 중 3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다. 바쁜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도 달랠 겸 잠시 짬을 내 생명의 원류를 찾아 떠나보자.
'클래식'의 첫사랑…암사 한강습지
까만 교복을 입은 고교생 준하(조승우)가 갈대숲 사이로 피어오르는 반딧불이를 잡아 갈래머리 주희(손예진)의 두 손 안에 넣어주던 영화 '클래식'. 이 장면을 아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암사동 한강습지부터 가봐야 한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배경음악으로 펼쳐지던 이 동화 같은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바로 암사동 한강습지다.
갈대군락지로 유명한 이곳은 한강변 모래톱에 펼쳐진 3만여평에 107종의 식물과 199종의 곤충류를 품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보호가치가 높은 애기부들, 질경이택사, 줄, 도루박이, 뚜껑덩굴, 세모고랭이, 날개골풀, 낙지다리 등이 관찰됐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환경부 보호종 말똥가리 등도 종종 관람객을 향해 얼굴을 내밀곤 한다.
나날이 식구를 불려 최근엔 서울시 보호 야생동물인 강하루살이 1종과 환경부 지정 보호종 남생이도 채집됐다. 습지 바로 옆으론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도 조성돼 있어 운치를 더한다.
갈대사이로 자전거 타고…탄천 습지
책갈피를 펼치듯 갈대숲을 열어 젖히면 왼쪽으로는 개구리가 튀어오르고 오른쪽으로는 잠자리가 날아오르는 탄천. 서울 생태계의 둥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40만평 규모의 이 습지는 도심에 위치한 철새도래지로는 드물게 다양한 종의 철새가 드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인라인 스케이트, 마라톤 연습장 등이 마련돼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는 게 장점. 아침에도 많은 시민들이 운동과 산책을 즐기지만 탄천 습지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태양을 피한 오후 시간대가 제격이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갈대밭에 어리는 저녁노을을 감상하다 보면 성큼 다가온 가을의 기척이 느껴진다.
멀리서 한눈에…고덕 한강습지
강동구 암사동 정수장과 고덕수변생태공원 사이에 있는 3만2,000여평 규모의 고덕동 습지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한강 밤섬과 함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구석구석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데크는 설치돼 있지 않지만 정수장과 생태공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멀리서 습지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 한강 밤섬도 마포대교나 서강대교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접근이 통제돼 있는 방이동 습지나 진관내동 습지는 인근이 주택가라는 점을 고려, 조만간 관람 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이다. 문의 서울시 환경국 환경보호팀 (02)6321-4091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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