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광고판으로 변해버린 서울의 본모습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서울시의회 공보실에 근무하는 안준희(44·사진)씨는 남들보다 출퇴근 길이 길다. 거리 곳곳에 나붙은 불법광고물을 제거하기 위해 서초구에 있는 집에서 시의회까지 오가는 동안 모두 7개의 자치구에 들르기 때문.
대리운전 광고부터 '중국·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오빠 전화해' 같은 문구가 적힌 성인 광고물까지 그가 지난 3개월간 수거한 불법 광고물은 무려 1톤 분량에 달한다.
안씨가 불법 광고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나면서부터. 월드컵 당시 그 어느 때보다 깨끗했던 서울시내가 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암세포 퍼지듯 불법 광고물로 도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안씨는 도시미관을 해치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불법 광고물을 없애줄 것을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요청했지만 방치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설사 수거해 가더라도 다음날 아침이면 새로운 광고물들이 나붙곤 했다.
참다 못한 안씨는 오전 6시30분부터 출근 전 두 시간 반, 퇴근 후에는 자정까지 승용차나 빌린 트럭을 이용해 직접 불법 광고물 실태파악과 수거에 나섰다. 디지털 카메라와 주머니칼, 1.5m 장칼 등 광고물을 떼내기 위한 장비를 자동차에 싣고 다니며 일단 불법 광고물이 눈에 띄면 사진 촬영부터 했다.
안씨는 "날마다 광고물을 떼러 다니니 처음에는 보통 크기였던 대리운전 현수막이 며칠새 12m짜리 대형 현수막으로 바뀌었고, 전봇대에 부착되는 광고물도 손이 안 닿는 곳으로 옮겨져 갈수록 필요장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의 이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서울시는 그가 모아온 1톤 분량의 불법 광고물을 10월께 서울광장에 전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안씨는 "시는 물론 경찰청에도 정리한 실태자료를 제출해 음란성 광고물에 대한 근원적인 조치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불법 광고물 게재자에 대한 제재 강화, 불법광고물의 식별을 위한 대시민 교육 등을 정책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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