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자리잡은 에콰도르공화국의 독립기념일이다. 1809년 8월10일 이 지역의 스페인 식민지 주민들은 본국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처음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의 에콰도르 지역이 스페인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의 부하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가 그 중심도시 키토를 해방한 1822년이다. 그 뒤 에콰도르는 누에바(新)그라나다(콜롬비아), 베네수엘라와 묶여 볼리바르가 다스리는 그란(大)콜롬비아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볼리바르의 또 다른 부하였던 후안 호세 플로레스가 에콰도르를 콜롬비아에서 분리시켜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1830년의 일이다.독립 뒤에도 에콰도르는 지역·계층 대립에 따른 내전, 페루·콜롬비아와의 국경 분쟁 등으로 나라 발전이 사뭇 더뎠다. 1,340만에 이르는 국민의 인종 분포는 원주민인 인디오가 35%,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45%, 유럽계 백인이 10%, 그리고 나머지 10%가 흑인과 물라토(흑백 혼혈)다. 유럽인들이 침입하기 전에 에콰도르 지역에는 여러 개의 인디오 국가가 분립해 있다가 1460년 잉카제국에게 정복당했고, 1532년 잉카제국이 스페인 군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멸망하면서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에콰도르를 스페인 지배에서 해방시킨 볼리바르는 자신이 수립한 그란콜롬비아공화국이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세 나라로 분리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얼마 뒤 실의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로부터 '해방자'(El Libertador)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던 그의 이름은 부하 수크레가 해방시킨 또 다른 나라 볼리비아의 이름 속에 살아 남았다. 에콰도르라는 국호는 그에 견주면 밋밋하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국토의 북부를 적도가 지난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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