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성적이 뭐라고 티격태격했는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성적이 뭐라고 티격태격했는지…

입력
2004.08.10 00:00
0 0

숙아! 장학금 운운하며 학점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그토록 당부했건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나니 문득 네 생각이 나는구나. 그 때 성적이 뭐길래 그랬는지 말이야. 그러면서도 여전히 신통치 않은 자식 성적에 언짢아 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만 하구나.기억 나니, 숙아? 무슨 유행처럼 서로 말 안하는 게 전교로 확산되어 문제가 됐었지.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로 말을 안하고 지냈고.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담임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찾아 오셨잖아? 두 동생 역시 우리처럼 말을 하지 않아 이유를 캐물으니 언니들이 말을 하지 않아 따라서 안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지. 게다가 우리는 성적 관계로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교무실로 불려가 벌을 받았지.

나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선생님의 도우미로 시험지 채점을 했었어. 동생들 담임 선생님 부탁으로 그 반 시험지 채점까지 하는 바람에 누구보다 먼저 성적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지. 근질근질한 입이 비밀을 폭로했고 결국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 엎치락 뒤치락 불꽃 튀는 경쟁을 하던 동생들 앞에서 서로 자기 동생이 1등이라고 우기다가 말다툼으로 이어져 말을 안 하게 됐던 것이었고 서로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말을 안 했지. 그러다 언제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우린 그 후 더욱 각별한 우정으로 지내게 됐지.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을 때 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구나. 한 줌 재로 변했을 것이라는 비보에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단다. 네 부모님께 그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드릴 말씀이 없던 나는 그저 죄송스럽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너와 화해하기를 참 잘했다는 것이었어.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가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생각해 본다. 학교의 우등생이 꼭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성적이 뭐라고 그렇게 그랬는지 돌이켜보면 쓴웃음이 나오는구나.

그러면서도 내 자식의 성적은 나보다 낫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야. 아직도 입안이 보랏빛으로 물이 들도록 진달래 따먹으며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던 꿈 많은 열일곱 네 모습이 아른거리는구나.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꽃다운 스무 살 나이에 서둘러 훌쩍 떠나버렸니? 숙아, 교통사고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거라.

/김미자·경기 여주군 대신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